지단, 클럽 운영진으로 복귀희망.
▷브라질이 배출한 불세출의 축구스타 펠레에게는 축구황제라는 칭호가 고정수식어로 따라붙는다. 제2의 펠레는 많다. 그러나 펠레는 오직 한명이다. 미국에서 나온 청소년용 축구서적에 실린 말이다. 에우제비오(포르투갈) 보비 찰튼(잉글랜드) 등은 펠레보다 연배가 위인 까닭에,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등은 펠레와 거의 동년배인 까닭에 제2의 펠레 칭호를 받기 어려웠다.
다만, 1974년 서독월드컵 당시 서독우승의 주역 베켄바워에게는 독일어로 축구황제를 뜻하는 푸스발 카이저란 칭호가 붙었다. 만국공통은 아니었다. 독일 영역을 벗어나면 잘 먹히지 않았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우승을 끝으로 펠레가 브라질대표팀 유니폼을 벗고, 1974년 서독월드컵 결승전에서의 겨루기를 끝으로 베켄바워와 크루이프도 떠난 뒤, 세계축구계는 제2의 펠레를 학수고대했다.
지코(브라질). 1980년대 월드스타 지코는 피부색에 빗대어 하얀 펠레로 불렸다.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브라질축구가 당대의 세차례 월드컵(1982년 스페인,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에서 연거푸 결승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탓에 지코의 부가가치는 박할 수밖에 없었다.
지코와 비슷한 시기 활약했던 미셀 플라티니(프랑스)는 1958년 스웨덴월드컵 준우승 이후 기나긴 겨울잠에 빠진 프랑스축구를 세계열강(1982월드컵 4강, 유로1984 우승 등) 대열에 올려놓은 수퍼스타였지만 펠레와는 플레이스타일이 판이한데다 지코와 마찬가지로 프랑스가 월드컵 결승에 오르지 못해 제2의 펠레 칭호를 듣기에는 2% 부족했다.
1986월드컵에서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링 슈팅 패싱을 선보이며 아르헨티나를 챔피언에 올려놓은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야말로 펠레와 쌍벽을 이루는 초대형 축구스타였다. 20세기 축구대왕을 딱 두명만 뽑으라면 펠레와 마라도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뒤끝이 좋지 않았다. 그라운드 안에서 보인 마라도나의 신성성은 마약 스캔들 등 그라운드 밖에서 저지른 엇나간 행동들 때문에 크게 훼손됐다.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로 데 리마. 스무살도 안된 이 사나이가 유럽 빅리그를 휘짓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세계축구계는 비로소 명실상부한 제2의 펠레가 출현했다고 열광한다. 그가 펠레보다 더한 축구황제가 될 것이라고 흥분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름에서 긴 꼬리를 잘라내고 호나우두(브라질)라 불린 1976년 9월생 청년이다.
16세 때인 1993년 프로데뷔, 1994년 수퍼컵 득점왕, 1995년 네덜란드 챔피언십 득점왕,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올해의 선수, 그중 1997년과 1998년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선정 올해의 선수, 브라질의 1998년 프랑스월드컵 준우승과 2002년 한일월드컵 우승 주역, 월드컵본선 개인최다득점 기록보유자(15골)….
폭발적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동물적 득점센스로 그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적어도 몇 년동안은. 그러나 그 역시 마라도나처럼 말년이 썩 좋지 않았다. 부상의 덫에 자주 걸리고 여자스캔들에 심심찮게 휘말렸다. 날렵한 몸(183cm/77,8kg)은 자꾸 불었다. 올해 2월 부상이웃 이전, 그의 신상명세에는 183cm/82kg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85kg가 넘어 보이고 배까지 나왔다. 부상치레를 하는 동안 브라질의 한 호텔에서 성매매를 하(려)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호나우두의 몰락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그가 승부의 잔디로 돌아왔다. 14년간 뛴 유럽 빅리그는 아니다. 브라질 프로리그 코린티안스가 새 둥지다. 최근 입단계약을 맺었다. 계약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 32세. 몸만 회복된다면 앞으로 2,3년은 브라질이 아니라 빅리그에서도 거뜬히 뛸 수 있는 나이다.
그 역시 코린티안스를 종착역이 아니라 빅리그 복귀를 위한 징검다리로 여기고 있음을 시사했다.
▷편견은 흔히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말한다. 긍정적 고정관념도 편견은 편견이다. 객관적 종합적 사고에 지장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고정관념의 폐해는 부정적 고정관념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고정관념의 대상이 이익을 보느냐 손해를 보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가 유행시켰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프랑스=예술의 나라 혹은 프랑스=패션의 나라라는 말이 자주 쓰였던 것도 프랑스의 다른 면을 살펴보는 데 적이 지장을 줬다. 그중 하나가 프랑스와 스포츠의 관계다. 프랑스는 스포츠 강국이다. 특히 근대올림픽과 월드컵축구에서 차지하는 프랑스의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1896년 부활된 올림픽은 프랑스인 쿠베르탱 남작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1920년대 창설된 국제축구연맹(FIFA)과 1930년 시작된 4년주기 월드컵축구대회 역시 프랑스인 줄리메(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브라질이 3회 우승으로 영구보관하게 된 챔피언 트로피의 이름은 줄리메컵)의 선도적 노력으로 결실을 봤다.
포커스를 축구로 좁혀보면, 프랑스는 월드컵 초창기부터 강호였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럽축구가 워낙 세 이후 몇차례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한데다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한국에서 프랑스축구가 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1980년대 미셀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축구가 세계적 강호로 부활하자 프랑스도 축구를?! 식으로 놀라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네딘 지단. 플라티니와 함께 부스스 일어나 세계열강 대열에 재진입한 프랑스축구는 지단과 함께 세계최강 자리에 오른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우승이다.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축구의 위세는 대단했다. 2000년 유럽선수권(유로2000)에서 우승하고 2001년 대륙간컵(컨페드컵)에서도 우승했다. 부상 때문에 지단이 뒷전에 처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몸을 추스린 지단이 다시 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축구뿐 아니라 세계축구사에서도 지단의 지위는 각별하다. 골 넣는 공격수나 골 막는 수비수에 실린 축구의 액센트가 플레이메이커로 옮겨지게 만든 예술적 조율사가 지단이다. 포지션의 ‘권력이동’은 10번 유니폼의 이동으로도 확인된다. 과거에는 주로 팀내 최고골게터들이 10번 유니폼을 입었으나 지단 시대를 거치면서 그것은 플레이메이커 전용이 되다시피했다.
지단에 얽힌 유명한 에피소드 둘. 하나는 알제리의 지단 퇴짜사건이다. 북아프리카 알제리계인 지단은 1990년대 초 아버지의 나라 알제리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알제리감독은 그에게 퇴짜를 놓았다. 발이 느리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발보다 훨씬 빠르게 적진을 헤집는 킬러패스와 게임을 조율하는 능력으로 무장돼 있었지만 알제리감독은 그저 단순스피드만 보고 지단의 물건됨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는 지단의 헤딩기피증과 월드컵 결승전 헤딩골 2방이다. 일찌감치 대머리증세를 보인 그는 헤딩을 지지리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도박사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호나우두의 브라질이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1998월드컵 결승전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넣으며 프랑스의 첫 우승(최종스코어는 3대0)을 견인했다. 지단의 헤딩기피증을 익히 아는 에메 자케 당시 프랑스감독은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이 머리로 골을 넣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진반농반 술회한 바 있다. 지단은 이탈리아와의 2006월드컵 결승전 연장전 후반에 이탈리아 수비수 마테라치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는 홧김에 대머리로 그의 가슴을 들이받아 퇴장을 당한다. 그것이 그라운드위 현역선수로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단이 축구현장 복귀의지를 내비쳤다. 선수가 아니라 구단 운영진으로다. 11일 프랑스언론에 따르면, 지단은 축구계로 돌아올 준비가 됐다며 클럽의 중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감독이 아닌 단장이나 회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단이 뛴 마지막 프로팀이었던 레알 마드리드가 지단 영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레알 마드리드는 호나우두,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호베르투 카를루스, 라울 곤잘레스 등 초호화 진용으로 세계최강 자리를 지켰던 레알 마드리드는 올 여름 현역최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U)를 영입하려다 실패한데다 그 파동 와중에 속이 뒤틀린 호비뉴(맨시티)가 떠나버리는 등 팀사정이 말이 아니다.
새 시즌들어 부진을 거듭하자 구단은 최근 베른흐 슈스터 감독을 전격 해임했다. 구단 프런트 교체여론도 높다. 때마침 지단이 속내를 밝혔다. 지단과 마드리드의 재회 분위기는 무르익는 것 같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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