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마운드. 단 한번만 밟아봐도 여한이 없을 지구촌 야구 사나이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랜디 잔슨과 그렉 매덕스. 이 두 사나이는 그곳에서 무려 20년 이상 버텼다. 강산이 두번 바뀌고도 남도록 그들은 방망이질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지구촌 대표타자들과 일구일구 피말린 승부를 벌였다. 한창 때 잔슨의 왼손에서 뿜어나온 번개같은 백도어 슬라이더에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헛손질을 했던가, 매덕스의 오른손을 떠난 초정밀 로케이션 볼에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허탕을 쳤던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내로라하는 홈런타자며 안타제조기며 마음먹은 대로, 언제까지나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잔슨과 매덕스도 색깔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감촉도 없이 다만 흘러만 가는 세월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특히 마흔이 넘어서면서 괴력의 두 투수는 눈에 띄게 마력을 잃어갔다. 전성기 때라면, 어쩌다 한번 지는 날이면 되레 더 큰 기사감이 되곤 했던 수퍼스타 두 투수는 어느덧 1승 한번 올리자면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용을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올해 시즌이 끝나고 내년 시즌을 위한 짝짓기가 한창인 요즘, 두 사나이가 서로 다른 마이 웨이(My Way)를 부르고 있다. 만 45세 잔슨은 하산을 거부했다. 만 42세 매덕스는 하산을 선택했다.
▶랜디 잔슨은 올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뛰었다. 2001년 가을 그곳에서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 뒤 이곳저곳 유니폼을 바꿔 입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그는 D백스로 귀환, 전성기만은 못해도 그럭저럭 이름값을 했다.
잔슨은 D백스에 남기를 원했다. D백스는 그를 원하지 않았다. 잔슨은 연봉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잔류희망을 접지 않았다. D백스는 결별의사는 번복되지 않았다. 작년까지 몇 년동안 수술과 부상치레로 지독한 부진을 겪은 잔슨이 D백스에 미련을 가진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킬레스건은 허리 무릎 발 성한 곳이 드문 그의 몸상태였다. 특히 날씨를 많이 타는 허리 때문에 그는 건조한 곳을 선호했다.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피닉스에 진을 친 D백스는 야구를 떠나 그의 몸을 건사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D백스가 잔슨을 버린 건 꼭 돈이나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D백스가 그려놓은 향후 선발투수 운용플랜에서 잔슨의 자리매김이 애매했다. 갈라설 수밖에.
올해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잔슨은 트레이드 시장에 올려졌다. 잔슨은 죽지 않았다. D백스는 버린 그를 다른 팀들이 여기저기서 입질하고 있다. 그중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오클랜드 A’s도 들어있다.
두 팀 모두 ‘값싼 거물’을 영입해 선발투수 운용에 숨통을 트였으면 하는 심산이다. 베이지역 야구이웃은 특히 잔슨이 현역선수 말년을 고향팀에서 보내고 싶어한다는 전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잔슨의 고향은 월넛크릭이다. 그곳에는 그의 노모가 살고 있다. 게다가 기후가 피닉스만큼 건조지대는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든ㄴ 신경성 허리통증에 시달리는 그에게 아쉰대로 괜찮은 곳이다. 잔슨이 비록 사양길에 있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홈팬들의 관심을 확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상업적 계산도 두 팀의 군침을 돌게 하는 요소다. 이밖에 LA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컵스, 밀워키 브루어스 등이 잔슨을 탐내는 팀들이라는 후문이다.
어디가 됐든 잔슨이 내년에 메이저 마운드에 서게 되면 아무리 못해도 개인통산 300승 고지에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해까지 295승을 거뒀다. 개인통산 5,000 탈삼진 고지 정복도 유력하다. 선수생명 연장을 위해 올해 연봉 1,500만달러에서 400만달러로 낮춰 제시하고도 D백스로부터 버림을 받은 잔슨이 어느 팀 유니폼을 입게 될지는 하루이틀 사이에 결정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스토브시즌 최대어 투수들인 CC 사바티아와 AJ 버넷, 데릭 로, 제이크 피비 등의 거취가 결정된 뒤 잔슨의 행선지도 정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렉 매덕스는 올해 정규시즌 막판에 샌디에고 파드레스에서 LA 다저스로 이적했다. 다저스가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고 큰 게임에 강한 그를 영입한 것이다. 그는 기대에 못미쳤다. 다저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시카고 컵스에 3연승을 거두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1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매덕스는 포스트시즌에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에게 건 기대가 유통기한 지난 것이었음을 안 이상 다저스는 그와의 결별을 전제로 마운드 플랜을 짰다. 그는 한동안 고뇌했다. 새 둥지에서 더 뛰느냐, 이쯤해서 멈추느냐.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그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5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제구력의 마법사. 1986년 컵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 해 23년동안 메이저 마운드를 지킨 그는 ML 역사상 볼컨트롤이 가장 뛰어난 투수 중 한명으로 꼽힌다. 23시즌동안 5,008.1이닝을 소화하며 허용한 볼넷이 999개밖에 안된다. 그중 작전상 일부러 내준 경원사구가 177개다. 이것을 빼면 9이닝 1게임 완투를 기준으로 그는 볼넷을 1.48개씩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상대타자가 잘 때려서 안타는 될지 몰라도 매덕스가 잘못 던져서 볼넷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얘기다. 특히 1997년에는 232.2이닝을 소화하면서 내준 볼넷이 20개밖에 안됐다.
그가 마지막이 된 올해까지 거둔 성적은 355승227패다. 평균자책점은 3.16이다. ML 통산 다승 8위에 탈삼진 10위(3,371개)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4시즌 연속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올해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서도 18번째 황금장갑(골드글러브)을 차지했다. 골드글러브는 포지션별 수비력이 가장 좋은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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