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억 워싱턴 한인연합회 회장이 33대 회장 대행인가 34대 회장인가? 지난 23일 선거를 통해 김영천 신임 한인연합회장을 선출한 한인사회가 전임 회장의 자격과 대수 문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연합회는 김인억 회장이 33대 회장인지 34대인지를 결정하는 의제를 이번 선거에 내놓기까지 했으나 투표자 과반수가 넘는 2,000여명은 아예 대답을 회피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됐다. 오히려 ‘33대 회장 대행인지 34대 회장인지를 물었어야 했다’며 의제 자체를 불순하게 보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이렇게 가다가는 회장 이취임식 때 차기 회장은 자신의 대수도 모르고 임기를 시작해야할 우스운 꼴이 돼버렸다.
현재 논란은 “직선제를 명시한 한인회 회칙을 유린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임시총회를 거쳐 회장 승계와 대수 변경을 공식적으로 인준을 받았다”며 맞서는 측으로 크게 나뉜다.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것은 워싱턴 한인회 역사에 부끄러운 오류를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한인사회 내에서 잠깐 시끄럽더라도 치열한 법리 논쟁을 거쳐 틀린 것을 고쳐 한인회를 바른 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불법을 보고도 그냥 묵인한다면 그것을 인정해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제의 2007년 임시 총회에 참석했든 안했든 상관없이 김인억 회장 대행 논란은 한인 유권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할 일이다.
논란 핵심은 “회장대행이냐”“회장이냐”
투표자 절반이상 “33대냐 34대냐”는 엉터리 질문에 답변 외면
회칙 변경후 자신부터 적용 잘못...‘승계-직선제’ 조항은 모순
<주요 쟁점들>
김인억 회장이 33대 회장대행인지, 34대 회장인지와 관련해 지난 2년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간추리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회칙 11조 C항의 회장 ‘대행’ 조항을 ‘승계’로 바꾼 이사회의 적법성 2) 김옥태 33대 회장이 총회 인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공식 회장이 아니라는 주장 3) 김인억씨 회장 승계 및 회장 대수 변경과 관련된 1, 2차 이사회의 적법성 4) 회칙 개정에도 불구하고 15조에 분명히 직선제를 명시하고 있어 총회만 거친 김 회장은 대행이라는 주장 5) 2007년 3월17일 개최된 임시총회도 회의를 진행할 의장을 공식 선출하지 않는 등 절차상 문제가 많았다는 의견 6) 변경된 회칙이 수석부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한다고 명시하면서도 임기는 전 회장의 잔여임기를 채우도록 해 대행 체제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 점.
이밖에도 김 회장은 직접 선거를 통해 한인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지 않았고 공탁금도 내지 않았으며 만일 김영천 회장이 임기 시작 3개월 내 유고됐을 시 수석부회장이 과거와 비슷한 절차를 밟기만 하면 당당하게 돈 한푼 안쓰고 차기 회장이 될 수 있는 여지를 그대로 남겨뒀다는 점을 지적하며 당연히 이번에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반면 김 회장의 34대 인준을 인정해야 된다는 측은 “적법한 이사회와 총회를 거쳤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혹자는 “미국 대통령도 유고시 한 단계씩 대수가 올라갔다” “봉사단체에서 대수가 뭐가 중요한가” 묻고 있다. 임시 총회 및 1, 2차 이사회의 적법성 논란과 관련 이사회 구성의 일부를 책임진 북버지니아한인회와 수도권메릴랜드한인회가 제외됐다는 지적에도 “당시 특별한 상황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으며 두 한인회가 이사회에 잘 참석하자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논란을 들여다보면 사안은 다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개정 회칙이 변경 주체인 회장단에게 적용될 수 있나’와 ‘회장 승계를 인정하는 조항과 직선 조항을 어떻게 서로 상충되지 않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이런 문제들은 상위법과 하위법과의 관계, 조항 간의 충돌, 개정 회칙의 적용 시기 등을 고려해 원칙을 따져 풀어야 한다.
<김인억 회장은 33대 회장직을 ‘승계’ 받았나>
한인연합회 회칙은 5장 7항에서 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발의로 총회를 열어 출석한 정회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회칙 개정이 통과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에 근거하면 ‘대행’을 ‘승계’로 바꾼 절차와 회칙 개정 자체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회장 대행으로 있는 상황에서 회칙을 바꿔 정식 회장으로 취임한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사회와 총회라는 형식을 갖추는 것 외에도 사심 없는 회칙 변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음 대수부터 적용돼야 한다. 닉슨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 유고시의 승계 및 대수 변경은 기존의 헌법을 적용해 이뤄진 것이다. 법을 변경해 하지는 않았다.
또한 승계라는 단어도 제대로 의미가 정리되지 않은 용어라 혼란을 준다. 뭘 승계한다는 말인가? 33대 회장을 두 사람이 나눠서 한다는 말은 세 사람도, 네 사람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사회와 총회를 거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보궐선거를 통해 정식으로 다시 회장을 선출하면 되는데 그런 과정을 굳이 무시하고 법 개정이라는 무리수를 둔 이유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보궐선거에 당시 김 수석부회장이 출마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승계와 직선제 조항의 관계>
한인연합회는 회칙을 개정하면서 자기모순을 범했다. ‘직선제’ 조항을 그대로 놔둔 것이다. 또 ‘회장 유고시 수석부회장이 회장을 승계 받아 잔여 임기를 채운다’고 명시해 정상적으로 선출된 회장과 달리 임기가 짧은 절름발이 회장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대행’이다.
똑같은 회장직을 승계 받을 수도 있고 투표로 선출할 수 있다는, 앞뒤가 안 맞는 회칙은 존재할 수 없다. 회칙 스스로 ‘승계’로의 개정이 효력 근거가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어느 원로가 지적한 것처럼 간단하게 회장직을 승계 받을 수 있는데 엄청난 비용 들여가며 선거에 나설 이유가 없다. 한인연합회는 임시 총회 후 얼마 안 있어 일간지에 개정위원회의 이름으로 회장 간선제 선출 방식을 고려한다며 민의를 묻는 형식의 광고를 냈다. 즉 기존 회칙이 직선제임을 시인한 것이다.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조항은 임시 총회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김인억 회장은 직선제를 명시한 15조에 따라 투표를 통한 선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외 임시총회 관련 논란들>
많은 한인들이 임시총회 개최 방식에 도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한인들은 원론적으로 회장 선출과 관련해서 선거 개표 후 또 총회를 열어 회장을 인준하는 형식이 필요한가도 묻고 있다. 2007년 봄 임시총회가 한인 유권자들의 생각을 대변하지 못하고 몇 몇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김인억 회장을 33대에서 34대로 대수를 바꿀 때도 당시 이사장의 즉석 제안에 총회 참석자들이 박수로 인준한 것은 회칙과 조직 운영의 원칙을 무시한 월권적인 결정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잘못된 총회 운영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김영천 회장 당선자가 곧 열리게 될 총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한인연합회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총회의 역할과 기능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수 천명의 유권자들이 한인사회 대표자로 선출한 회장을 200-300명의 총회 참석자들이 다시 인준하도록 한 절차가 비논리적이라는 주장도 많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들린다. 기본은 ‘대행’을 ‘대행’ 위치에 놓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대행’이 ‘승계’로 바뀌었다면 개정 회칙은 다음 회장단부터 적용돼야 한다. 승계도 되고 직선으로도 회장 선출이 가능한 모순도 고쳐야 한다. 한인 유권자들에게 물어 당선된 회장이 총회에 참석한 수백명의 총대에 의해 무효화될 수도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있어서는 안된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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