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병원들은 감기 독감환자들로 예년 어느 때보다도 붐빌 것으로 보인다.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의학적 근거가 있는 예측이다. 급작스런 경기침체에 맞닥뜨리면서 미국인들이 받는 스트레스 레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심리학회가 조사해 보니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경제적 스트레스로 화 혹은 분노, 불면증을 겪고 있으며 과식이나 불량식품 탐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전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상적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46%가 지금의 소득으로 가족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풍요롭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스트레스가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상식이다. 스트레스 레벨이 높아지면 특히 바이러스의 공격에 취약해 진다. 그러니 올 겨울 감기환자 급증을 전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온갖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나면 국민총생산(GNP)도 따라 늘어난다. GNP는 무슨 생산적인 경제행위를 해야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 변호사들의 소송 같은 행위를 통해서도 GNP는 상승한다. “병원 침대에 누워 비용이 많이 드는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말기 암 환자야 말로 국가경제의 영웅”이라는 조롱 섞인 비유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GNP라는 숫자가 가지는 허구이다. 어쨌든 GNP 하락을 의미하는 경기침체로 쌓인 스트레스가 역으로 GNP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요즘은 온통 줄어들고 떨어졌다는 푸념과 하소연들뿐이다. 경제지표들이 나빠지면서 소득이 줄고 매상도 감소하고 있다. 감원 칼바람에 몸도 마음도 한껏 움츠러들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움츠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고 나면 다우존스지수가 500포인트 이상씩 폭락해 “이러다 정말 3,000선까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되던 지난 10월 한 한인 은행장이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경제가 악화되면 분명 살기가 힘들어지겠죠. 하지만 경제는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모든 사람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 물가 등 전반적인 경제 구조가 이에 맞는 수준으로 서서히 조절이 이뤄지게 되죠. 당장은 힘이 들어도 어느 정도 적응기간을 거치면 다시들 살만하다고 느끼게 될 겁니다.”
그의 이런 ‘장담’을 뒷받침 하듯 개스값은 계속해 떨어지고 있으며 다른 물가들도 분명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사고 싶은 일본차가 있는데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한 한인은 얼마 전 이 차를 파격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며 함박웃음이다. 불경기가 선사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언론들도 고통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미국인들의 기 돋우기에 나서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는 식의, 칼럼에 가까운 사설을 싣는 주류 신문도 여럿 눈에 뜨인다. 사설을 읽어 보니 떨어지는 물가 등 긍정적 지수가 많을 뿐 아니라 위기와 고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우치게 됐으니 감사할 일 아니냐는 내용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혼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시절을 지나고 있지만 우리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돈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 그리고 건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이것을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일본 도호쿠 지방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이곳에서 몇 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캠페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없는 것을 애달파하는 대신에 있는 것을 찾자”는 캠페인이 그것이다. 그동안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에만 시선을 집중해 왔으며 이런 의식이 발전을 가로 막았다는 자각의 결과였다.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는 이 캠페인을 통해 주민들은 그동안 업신여겨 왔던 지역 산물들을 특화해 파는 사업을 추진했으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캠페인 이후 성업 중인 한 식당의 이름이 캠페인의 핵심을 잘 말해준다. ‘아루케 차노’, 도호쿠 지역 사투리로 “아하, 여기 있었구나”라는 뜻이다. 멀리 있는 것만을 바라보던 사람이 문득 자신의 발밑에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을 표현하는 말이다.
위기와 고난은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또 고리타분하게 여겨왔던 박제된 지혜가 생명력을 얻는 시기이기도 하다. 앞만 바라보느라 미처 제대로 눈길을 주지 못했던 것들에 시선을 돌리는 순간 당신 입에서도 이런 작은 탄성이 흘러나올지 모른다. “아하, 여기 있었구나.”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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