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가 뽑은 ‘올해 칠면조된(새된) 선수들’
성질을 못이겨…MVP 후보 쿠엔틴 손목골절
끝모를 부진에…A.존스 허덕, 라이온스 연패
거짓말 때문에…존스 옥살이, 클레멘스 추락
▷터키탕(Turkish bath)은 본래 이슬람권, 특히 터키(투르크) 등지에서 유행하는 건강식 목욕탕이다. 후끈한 열기와 자욱한 증기가 가득한 밀실에서 비지땀 속에 노폐물을 흘려보낸 뒤 깨끗한 물로 목욕하는 곳이다. 터키탕이란 이름은 유럽인들이 붙여 퍼트렸다고 한다.
터키탕이 한국에서는 큰 매력을 끌기 어려웠다. 한국인의 체질에 맞춤형인 신토불이 한증탕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한증막이 아니었다면 터키탕은 한국에서 퇴폐탕이 아니라 본래의 건강식 목욕탕으로 자리잡았을지 모른다.
터키탕=퇴폐탕 등식이 굳어지자 터키정부는 한국정부에 터키탕이 터키의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을 호소하며 이 용어를 쓰지 못하도록 요청했다. 한국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1990년대 말부터 퇴폐 터키탕은 증기탕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칠면조(turkey) 요리는 추수감사절의 상징이다. 그 유래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반복 설명된다. 칠면조나 칠면조 고기를 뜻하는 turkey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왕년의 대국 터키(Turkey)와 철자도 발음도 같다. 여기까지는 별문제다. turkey에 담긴 파생적 의미들이 문제다. 죄다 Turkey정부나 터키국민들 입장에서 기분이 좋을 리 없는 뜻이다. 예컨대 실패작, 틀려먹은 사람(것), 쓸모없는 사람(것), 멍청이, 겁쟁이 등등이다.
터키탕 문제는 한국 등 극히 일부지역에서의 왜곡현상이나 정부차원 교섭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turkey의 속어는 그럴 수도 없으니 Turkey로서는 갑갑할 노릇이다. 스포츠 기사에서 Turkey 대표팀이 죽을 쑤면 turkey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Turkey가 turkey됐다는 식이다. 한국식 속어를 쓰자면 새됐다는 의미쯤 된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스포츠전문 주간지 중 하나다. 세계최대 뉴스전문 유선케이블방송 CNN의 자매지다. SI가 추수감사절 연휴가 닥치면 turkey를 이용한 푸짐한 화젯거리 기사다발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곤 한다. 물론 turkey에 담긴 비아냥 속어를 빗대어 만든 기사다. 한마디로 올해 칠면조된(한국식 속어로 ‘새된’) 선수들 리스트를 추수감사절 특집기사로 엮는 것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SI 선정 2008년 칠면조된(새된) 스포츠선수는 모두 23명이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등 야구선수가 7명으로 가장 많다. 야구가 미국의 대표적 패스타임으로 그만큼 대중적 관심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유형별로는 순간적이든 상습적이든 화를 참지 못해 칠면조된 선수들이 제법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수퍼스타 외야수 카를로스 쿠엔틴이 첫손에 꼽힌다. 정규시즌 막바지인 9월초까지 총 130게임에 출장해 36홈런 100타점에다 타율 2할8푼8리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유력후보로 거론되던 그는 경기중 헛스윙 삼진을 먹은 뒤 제 분을 삭이지 못해 손으로 방망이를 후려쳤다가 그만 손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시즌을 마감했다. MVP 후보군에서 탈락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넘보던 화이트삭스가 가까스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디비전 시리즈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부러진 손목을 부여잡고 바라만 봐야 했다.
마이너리거 투수인 훌리오 카스티요는 경기도중 상대팀 선수들과 패싸움을 벌이다 관중석에 강속구를 뿌린 죄로 기소까지 돼 메이저 마운드를 밟기도 전에 SI의 추수감사절 불명예 테이블에 올려졌다.
올해 성적이 이름값, 즉 몸값에 턱없이 못미쳐 고개를 들 수 없게 된 선수들도 다수 추수감사절 특집기사 테이블에 올랐다. 뉴욕 메츠 불펜투수진은 도매금으로 요리됐다. SI 편집진은 메츠의 불펜이 부실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거의 다 잡은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정규시즌 막판에 놓친 것을 아프게 꼬집었다. 애틀랜타 브레이스에 있다 2년 3,620만달러의 거액 계약서에 사인하고 LA 다저스로 옮긴 앤드로 존스는 부상과 부진으로 올해 농사를 망쳐 SI로부터 차라리 폭락한 주식시장에 투자를 했어도 그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추수감사절 퍽퍽한 기사요리의 밑천이 됐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및 교타자로 불렸던 그는 올해 162경기 중 고작 75게임에 출장해 어지간한 투수보다도 못한 1할5푼8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 와중에도 삼진은 오지게(76차례) 먹었다. 아버지 조지 스타인브레너로부터 뉴욕 양키스 운영권을 넘겨받는 첫해 14년만의 양키스 PO탈락 성적을 남긴 행크 스타인브레너, 지난 9월 개막전부터 최근까지 11전패를 기록중인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등도 SI의 칼질을 면치 못했다.
은퇴회견에서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은퇴를 번복한 NFL 수퍼스타 쿼터백 브렛 파브는 갈대같은 그 마음 때문에, NBA 댈러스 매브릭스의 괴짜구단주 마크 큐반은 불법 내부자 거래혐의 소송을 당한 때문에, 메이저리그 강타자 매니 라미레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떠나려고 방망이태업까지 벌인 행위가 괘심하게 비쳐진 때문에 각각 망신기사 밑천으로 요리됐다.
여자육상 단거리스타 매리언 존스와 메이저리그 수퍼투수 로저 클레멘스는 금지약물 복용의혹과 관련한 거짓말 때문에 망신살을 샀다. 존스는 현역시절 스테로이드 복용사실이 들통난데다 거짓말로 조사를 방해한 혐의까지 덧씌워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따낸 3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숱한 국제대회 메달과 기록을 박탈당하고 올해 봄부터 6개월동안 뉴욕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했다.
거짓말로 인한 클레멘스의 몰락도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말 금지약물 조사위원회가 그의 스테로이드 복용의혹을 제기한 이후 그는 기자회견이나 성명서를 통해 결백을 주장했으나 도리어 그의 거짓말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 FBI의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본보 27일자 스포츠섹션 3면 보도). 그 여파로 그는 휴스턴에서 열리는 자선골프대회 주최측으로부터 퇴박을 맞기도 했다. 어린이를 위한 지프 닐슨 골프의 날이란 이름의 이 자선대회는 그가 수년동안 호스트 자격으로 참가해 수백만달러의 어린이 돕기 기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던 대회다. 그가 제아무리 뛰어난 기록을 남겼어도, 그리고 이 대회에 제아무리 큰 이바지를 했어도,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한 것이 들통나 자신이 주연인 잔치에서조차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거짓말의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클레멘스(본보 26일자 스포츠섹션에 보도된 배리 본즈도 마찬가지) 사례는 보여준다. 순간적 실수, 심지어 홧김에 저지른 살인까지도 용서받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사기행위나 거짓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응징하는 곳이 미국이다. 그것이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다. 약물의혹과 거짓말 파동이 있기 전까지 클레멘스 격찬기사를 수없이 썼던 SI가 그에게 한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지체없이 올해 추수감사절 불명예 특집기사 밑천으로 삼은 것은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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