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은행들이 연방정부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고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규모가 큰 은행들은 6,000만달러 내외, 좀 작은 은행들은 이보다 적은 액수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연방 정부 플랜에 의해 한인은행들에 유입될 지원금 액수는 3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한인사회 자금 흐름에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성급한 기대는 금물. 은행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 보니 돈이 들어와도 당장 대출을 늘리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예금과 대출의 비율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환차익을 노린 거액의 돈이 한국으로 빠져 나가는 바람에 예금고에 빨간 불이 켜져 있는 상황이다.
경기가 좋고 예금고가 높았을 때는 대출에 인색하다가 막상 여력이 생겨 대출을 할 만한 형편이 되니 예금고가 뒷받침 되지 않고 있다. 은행과 커뮤니티 간에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와 은행들 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천문학적 액수의 구제금융안이 쏟아져 나온다. 전 세계가 금융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연방정부가 긴급히 불을 끄기 위해 내 놓은 7,000억달러 구제안에 이어 25일에는 또 다시 주택과 소비자 금융 정상화를 위한 8,000억달러 규모의 구제안이 발표됐다. 사망 직전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공적 자금 투입은 응급조치로써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지 남발은 곤란하다.
개인의 재산과 달리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은 재산은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개인 집 화장실은 깨끗해도 공원의 공중 화장실이 청결한 경우가 드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볼 때 이런 문제점이 자주 드러나는 것이 공적 자금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자금은 엉뚱하게 사용되거나 방만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주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분배와 사용에 있어 엄정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현상을 흔히 ‘공유 재산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7,000억달러 구제금융 집행 과정을 살펴보면 여기서도 어김없이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애초에 연방정부가 돈을 풀겠다고 했을 때 밝힌 사용처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매입이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 가운데 2,500억달러를 은행들에 직접 지원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절반인 1,250억달러는 9대 은행에, 또 다른 1,250억달러는 나머지 은행들에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9대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8,000여개 은행들 가운데 누가 지원금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 지금 추세로 봐서는 ‘너도 나도’가 정답일 것 같다. 건실 은행과 부실 은행을 가려 돈을 지원하겠다던 당초 취지는 희석되고 누구나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돼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구제금융에 사용되는 공적 자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 지가 사유재산처럼 명확하지 않은데다 승인 심사를 하는 금융 감독 당국들 입장에서는 자기 관할 은행들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화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심 쓰듯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자기 금고에서 나오는 돈이었다면 이런 선심이 가능할까. 한마디로 감독기관 입장에서는 손실은 없고 생색은 낼 수 있는, 남는 거래이다. “이만큼 지원해 줄 테니 받겠느냐”는 의사 타진과 수용, 그리고 승인이라는 형식적 절차 속에서 ‘옥석 가리기’는 이미 물 건너가 버렸다. 한인은행들은 마치 구제금융 승인이 은행의 건전성을 상징해 주는 것인 양 떠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실상이다.
천문학적 액수의 구제금융보다 시급한 일은 당장 겨울날 일이 막막한 서민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일이다. 풍요를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빈곤층 이하 생활자들이 3,600만명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면 이 숫자는 1,000만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들에게 수천억달러의 구제금융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무지 현실감이 와 닿지 않는 액수일 뿐이다. 통증이 심한 사람에게는 바로 고통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약을 건네주는 것이 돕는 일이다. 그들에게 장기적인 체질 개선 운운하는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설교일 뿐이다.
중산층의 어려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적 자금은 불가피한 부문에만 선별해 투입하고 재원의 여력을 국민들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돌려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빵이지 내일의 진수성찬 약속이 아니다. 몇 조달러의 공적 자금보다는 내 주머니 속의 몇 천달러가 훨씬 더 푸근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도 이런 조치의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으니 어떤 방안이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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