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세탁물을 맡기려고 단골로 다니던 한인 경영의 세탁소를 찾았더니 셔터가 내려진 채 문이 잠겨 있었다. 인근의 한인 가게에 가서 어찌된 일인지를 물었더니 폐업을 했다는 것이다.영세 규모의 이 세탁소는 평소에도 장사가 썩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밀어닥친 불경기를 견디지 못해 결국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 하면서 이렇게 한인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가게마다 매상이 뚝 떨어져 그나마 얼마 벌지 못하던 수입이 줄어들었고 어떤 가게들은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세탁소, 네일 가게들은 소리 없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한인들의 가게들도 종업원을 줄이니 실업자가 늘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보고 있고 수입이 감소한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집마저 빼앗기고 있다.
이런 경제적 타격이 심해지면서 그 여파가 경제를 넘어 정신적, 심리적 타격으로 번지는데 문제가 더욱 크다. 장사가 조금만 안 되도 기분이 울적해지기 쉬운데 적자가 발생하고 투자금이 날아간다면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가게를 닫거나 일자리를 잃어 앞으로의 생계마저 걱정하게 된다면 극도의 실의와 좌절에 빠질 수도 있다. 갑작스런 위기와 미래에 대한 불안 공포로 인해 정신적 공황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에서 경제적 실패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후유증이다. 사람들은 경제 상태가 어려워지면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 쉽고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우울증이나 다른 질병을 얻기도 한다. 경제문제가 가정불화를 일으켜 패가망신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인생을 파멸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한국의 외환위기 때 많이 보았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미국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이며 100년 만에 한 번 있을 만한 세계적인 위기라고 한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경제 뉴스를 보면 충격적이다.
그러나 지금 경제 위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보다 더 어려운 위기를 이겨낸 사람들이다. 나이가 좀 많은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 일이지만 한국이 6.25 직후 폐허가 되었을 때 하루 세끼의 밥을 제대로 먹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헐벗고 굶주린 상태에서 고생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자식들을 공부시켜 오늘에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이다. 지금 불황으로 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때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이고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그렇게 어려웠던 경제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사랑과 우정을 나눴고 인정과 의리를 지켰다. 아니,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린 요즘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진실한 사랑과 뜨거운 우정, 따뜻한 인정과 변함없는 의리가 있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가정을 풍비박산 내기보다는 가족들이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정을 지켰다. 지금 불경기로 인해 생활형편이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이것은 경제상태가 좋았을 때와 비교해서 나빠진 것이고 또 주위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힘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시작일 뿐,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경제 불안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파탄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것인지 무척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6.25의 폐허에서 일어난 것처럼 경제 파탄에서는 다시 일어날 수가 있다. 그러나 경제 파탄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거나 가정파탄이 나면 이것은 회복할 수 없으며 인생 그 자체를 망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만일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당하거나 실패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현명한 마음가짐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요즘 주식 투자에 실패한 증권사 직원들과 투자 자문회사의 사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는 비록 어떤 실패가 있더라도 이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선다는 오뚝이 정신으로 이 경제위기의 파도에 맞서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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