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특별한 감사가 필요한 시기
가족과 함께 알찬 댕스기빙 연휴
오늘 따라 길이 막혀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왔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야단이 났다. 아내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애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는데 드디어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엄마 생일이라고 전화를 건 아이들이 아빠가 아직 없다는 얘기에 “아니, 엄마 생일에 아빠가 아직 안 들어왔다고요?”라며 이 소식이 각지에 있는 애들한테 퍼진 것이다. 그래서 시카고에 있는 아들하고 보스턴에 있는 아들이 컨퍼런스 콜을 걸어서 진상파악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어떻게 된 거야? 엄마랑 또 싸웠어?” 사실 요즘 며칠 아주 사소한 일로 꼭 필요한 일 외에는 대화가 단절되어 있었던 터라 대답하기가 구차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우기는 나쁜 습성이 작동했다.
“너희들, 아빠라고 언제나 제시간에 들어와서 챙겨줄 것 다 챙겨주라는 법 있냐? 아빠도 아빠일 열심히 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늦을 수도 있는 거야!”하고 오히려 공세로 나섰다. “그렇지만, 아빠, 오늘 엄마 생일이잖아요, 그러면 엄마 선물도 사주고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내가 궁지에 몰리자 아내가 조그만 소리로 학부형들이 오늘 생일이라고 주었다고 올리브가든 선물권을 보여준다. 그래도 오기로, “너희들 할 일이 없는 모양인데 어서 끊고 공부들이나 해!” 하며 아내한테는 겨우 준비한 생일카드를 던져주고 화장실로 피해버렸다.
그래서 아내가 “아빠가 이제 들어오시면서 카드도 갖다 주셨고, 또 이제부터 올리브 가든에 가서 저녁도 같이 먹을 거야”라고 달래서 겨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얼굴을 씻고 나오니 이제는 막내딸이 전화를 해서 또 다그치는 모양이다. 누누이 설명을 해줘서 안심을 시키고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시카고에 있는 둘째 아들이 끝까지 미심쩍었던지 이번엔 영상전화로 전화를 해서 엄마아빠 얼굴을 좀 보자고 한다. 고양이보고 싶다는 핑계로. 자식들, 참! 이제는 해방이 되었나 했더니 아직도 멀었구나 하며 푸념을 하고 말았다.
오래 전 베스트셀러 중에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라는 책도 있었지만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같이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고 그런대로 온 인류의 역사가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또 부정 못할 사실은 애들을 키울 때는 그래도 애들이라는 큰 공동 관심 때문에 쉽게 화해하고 또 애들 앞이니까 자제력을 백분 발휘하는데, 일단 애들이 쏙 빠지고 나니까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전과는 달리 일에 대한 새로운 열정도 솟아나게 되고, 각자의 일에 열심이다 보면 서로에 대한 배려가 훨씬 떨어지는 것도 부정 못할 사실이다.
따라서 한번 삐끗하면 각자의 일을 핑계로 그전처럼 그렇게 급하게 화해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또 애들을 내보냈으니까 각자 어른들이 애들같이 유치해 지는 경향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는 애들 없이 처음 맞는 추수감사절이라 미리 계획도 짜고 차도 잘 정비해서 요세미티에서 오붓하게 3박4일로 가을 캠핑도 했지만, 올해는 마음일 뿐 아무 계획도 짜지 않고 있다. 막상 그날이 되면 개스가격도 많이 내렸겠다 어딘가로 가까운 곳으로 같이 떠나겠지만, 각별한 노력 없이는 자칫 화성으로 금성으로 각각 떠나버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애들을 키우고 또 새로운 삶의 도전을 맞으면서 느껴야 할 것은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일에도 새삼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애들을 위해서”라는 큰 제목으로 힘쓰던 것을 이제는 보다 크고 숭고한 목적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일에도 신경을 쓰고 좀 더 서로를 감사하는 자세를 키워야 하겠다.
마침 감사절을 맞았으니 미국에서 귀향객들이 제일 많은 공휴일 중에 하나인 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미 대륙에서 제일 첫 번째 지낸 감사절은 1565년 9월8일 플로리다에 도착한 페드로 알비레즈가 무사히 새 천지로 도착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드린감사절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기록된 추수감사절은 1619년 버지니아에 도착한 정착인들이 드린 감사절인데 오직 그룹설립 조항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드린 것이었다고 한다.
연대적으로는 밀리지만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알려진 감사절은 1621년 보스턴 인근 플리머스 플랜테이션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드린 감사절이다. 오늘의 플리머스에는 메이플라워라는 배도 있고 예전의 플리머스를 재현했다고 하는 마을까지 있지만 실제로 가보면 배는 원래의 그 배가 아니라 나중에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재건한 것이고, 그 목적도 추수감사절과 청교도와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은 것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작년 학부모 칼럼 참조).
그러나 어느 감사절보다 1621년에 보스턴 인근의 플리머스에서 드려진 추수감사절을 감사절의 원조로 삼고 있는 사실이 감사하다. 다른 두 곳의 감사절과는 달리 도착에 대한 감사나 풍요로운 수확에 대한 감사보다도 많은 희생과 어려움 속에서 드려진 감사절이기 때문이고 또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잔치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원수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드려진 감사절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미국의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해이다. 특별히 올해야 말로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서로 조그만 일도 감사해서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삶의 도전을 아름답게 극복해가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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