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성’이라는 말이 요즘 같이 절감되는 때도 드문 것 같다.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그 상황 전개가 너무 것 잡을 수 없어 불과 몇 달 전이 아주 먼 옛날 같이 느껴진다.
미국의 심장 월 스트릿이 주저앉았다. 한 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인베스트먼트 뱅크는 마치 역사의 유물같이 사라졌다. 일찍이 아무도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페트로 독제주의’ 체제들의 운명도 그렇다. 원유 값이 치솟으면서 러시아가 다시 부상했다. 이란의 도전은 한층 거세지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도 한 몫 거들고 나섰다.
이 체제들의 신세가 그런데 말이 아니다. 국제 유가가 불과 몇 달 만에 3분의1로 토막 나면서 경제가 곤두박질이다. 일부 산유국의 경우 체제 존속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중국 시대가 온다’- 퍽 오래된 거대담론이다. 올 초였나. 중국이 오는 2035년께 미국 경제를 따라잡을 것으로 예측한 카네기재단 보고서가 발표된 게. 하여튼 중국이 머지않아 수퍼 파워로 부상한다는 것은 상식 같이 돼 있다.
이 전망도 요즘 와서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입은 금융위기의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시대에 대한 믿음도 일부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보이고 있는 이상 징후를 먼저 지적하고 나선 논객은 고든 장이다. 그는 중국의 수출 전진기지 광동성이 맞은 상황에 새삼 주목하면서 체제 위기까지 점친 것이다.
올 여름 현재 광동성에서 1만개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 연말까지 그 수치는 2만개에 이를 전망이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실업자만 벌써 100만을 헤아린다.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다. 시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점차 폭력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러나 일개 지방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광주에서, 상해, 또 수도 북경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도시권 전체로 시위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 중국 공산당 체제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인 도시 중산층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그동안 온갖 소요로 그칠 새가 없었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연간 10만 건이 넘는 각종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다 농촌지역에서 발생한 시위다.
그 시위에 은행가, 의사, 교수 등 전문직 도시 중산층들이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로 주식 값은 70%나 폭락했다. 주택 값도 무려 50% 이상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 딸들이 직업을 찾을 수 없다. 대졸자 실업률이 20%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상황이 이들로 하여금 거리로 나서게 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만연한 부정부패에 진저리가 난 것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중국사회의 한 가지 불문율에 이들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79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 선언 후 이루어진 일종의 묵시적 계약이다. 공산주의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그 공산당 일당 독재를 허용해 왔다.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지속적 경제성장이다.
경제성장은 그러므로 공산당 체제유지와 직결된다. 이를 위해 공산당이 주력해온 것은 도시 중산층을 먼저 끌어안는 정책이다. 모든 경제개발정책은 도시 중산층을 그 주 수혜자로 시행됐다. 10억에 이르는 농촌지역 인구는 그 혜택에서 제외돼 왔다.
그 결과 부의 편재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또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는 그러므로 주로 농촌지역에서 발생했다. 그 시위에 그런데 도시 중산층들이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시위 발생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짤막하게나마 취급한다. 왜. 언론의 자유화가 이루어진 것인가. 그게 아니다. 시위가 너무나 보편화 돼서다.
“천안문사태 이후 북경 당국은 처음으로 가장 심각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뉴리퍼블릭지의 지적이다. 5,800여억달러에 이르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도 다른 게 아니라는 해석이다.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도시 중산층 시위사태를 사전에 막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시대 전망은 한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해왔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안정적이라는 가정이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체제다. 그러나 극히 탄력적인 권위주의 체제다. 이런 전제 하에 이루어진 전망이다. 그 전망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부요와 영화를 자랑하던 바빌론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 금융위기의 쓰나미는 ‘거대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천하대란(天下大亂)에 버금가는 사태일까, 아니면….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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