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 근처에서 15분가량 교통신호 옆에서 자주 쓰는 개인택시를 기다린 적이 있다. 이왕에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라 하는 일 없이 서 있지 말고 교통신호에서 기다리는 2레인의 차안에 타고 있는 이들의 표정을 관찰하기로 했다.
이날 필자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차들 중에서 운전자와 승객자리의 사람들이 즐겁게 얘기하고 웃고 있는 경우에는 영락없이 그 차들이 신통치 않은 차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머세데스나 렉서스 같은 비싼 차들을 탄 이들은 거의가 다 표정들이 근엄하고 굳어 있고, 커플들이라도 꼭 싸움한 사람들처럼 웃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허름한 차를 탄 이들일수록 밝고 낄낄거리는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필자의 짧은 시간의 관찰에는 물론 ‘연구조사’상의 허점들이 있다. 허름한 차들의 주인들은 히스패닉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는 히스패닉들이 일반적으로 낙천적인 사람들이란 걸 안다. 그러나 이런 표본 추출에서의 굴절된 상태가 필자가 내린 임시 결론의 의미를 바꾸지는 않는다.
필자가 요즘 하고 있는 연구 중에 ‘상대적 부’(relative wealth)에 대한 인식이 단체와 그룹의 예산결정 과정에서의 갈등해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이 있다. 인간의 행복과 효용성의 인식은 그 인간의 절대적인 부가 아니라 딴 사람의 소득과 자기 소득의 상대적인 비교에서 오는 영향이 크다는 경제학의 명제에서 이 연구의 기본이 시작한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 이런 얘기가 있다. 인간의 행복은 거의가 수준이 같다는 것이다. 2,000만달러짜리 로토에 당첨된 이들의 행복지수는 약 2주일 동안 보통보다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는데, 그 이후에는 다시 보통수준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담당 의사로부터 암 진단을 받은 이들의 행복지수는 2주일 정도 보통수준보다 상당히 내려가지만, 그 이후에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눈이 생기면서 보통수준으로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
있는 이들이나, 없는 이들이나, 모두가 어렵다. 수억, 수십억달러의 재산을 가졌던 큰 부자들도 어렵다. 주위에서 누구의 비즈니스가 어렵고, 누구가 직장을 잃었다는 얘기들을 십상 듣는다.
그러나 세상은 경제가 어려운 때 일수록 훈훈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사람들이 서로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더 어려운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옛날 한국이 어려웠을 때,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도, 사람들은 잘 살았다.
얼마 전 노태우 정권 때 실력자였던 이가 어떤 여자 동업자에게 돈을 크게 뜯기고 나서 법정에 간다고 하는 얘기가 본국 신문들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본국의 어느 썩은 정치인이 미주의 큰 부동산 투자가를 통해 얼마나 많은 부동산을 샀는가 소문도 듣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그렇게 많은 재산을 끌어 모은 이들이 남들의 눈이 무서워 훔친 돈을 쓰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안다. 쓰지도 못하는 돈을 둬서 무엇이 좋은가. 머리만 아프지 않을까. 현명한 이들은 그런 짓을 하며 살지 않는다.
부동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우리는 부동산이란 팔아버리기 전에는 우리가 좋게 쓸 수 있는 돈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안다. 현재 쓸 수 있는 현금이 아니면 재산이란 그저 사람의 기분일 뿐이다. 아니, 토지에는 재산세가 붙고, 건물 렌트를 주면 세입자와 골치만 아프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부터 부자와 똑같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잊고 있던 유타주의 5만평 부동산을 생각하라. 재산세도, 골치 아픈 세입자도 걱정할 필요 없는 당신의 그 부동산을 생각하라.
이제는 유명해져서 보통사람들까지도 잘 아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수천억달러의 재산을 두고 보통사람들이 사는 중산층 수준의 적당한 집에 산다. 그 곳을 방문하는 유명한 손님들과 가는 식당도 평범한 식당이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돈이 많이 사라졌으면, 비싼 식당 대신 코코스(CoCo’s)에 가면 된다. 증권할 돈 없이 살던 이들이라면 대중식당 대신 맥도널드에 가면 된다. 우리 재산 얘기 대신 ‘행복론’을 얘기할 때가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정신없이 “돈, 돈” 하며 살다가, 이제 지혜로운 삶을 생각할 귀중한 시간이 2년 정도 왔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한 2년 살아가 보자.
누가 아는가. 혹시 이 힘든 시간이 축복받은 시간일지도.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