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겪는 사춘기 시기의 한인 1.5·2세 청소년들은 1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인사회에 대한 애착이 큰 반면, 그들에게 참다운 지도자로 한인사회에서 역할모델을 제시할 인물부재에 대한 아쉬움 또한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올해 선발한 10명의 백상장학생 시상식이 열린 13일 오후 ‘한인사회와 나, 그리고 리더십’을 주제로 본보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장학생들은 스스로를 한인사회 구성원으로, 한인사회의 일부라고 느끼고 있었으며 한인기관이나 단체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도 컸다.
장학생들은 한국어 사용이 다소 불편하지만 한인기관과 단체를 통한 봉사활동 참여로 자신들이 한인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방문 기회도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국일보가 매주 수요일 발행하는 뉴욕타임스 영문판에 한인사회 소식이 함께 영문으로 실리는 것은 영어권 한인 1.5·2세들이 한인사회와 연결고리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한인기관과 단체가 제공하는 대다수 인턴십 프로그램의 경우 분야별 직업의 특성을 파악하는 기회보다는 단순 업무 보조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아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장학생들은 참다운 지도자의 덕목으로 사람들을 아우르고 소통시키는 대화의 기술, 인적 네트
웍을 통한 폭넓고 다양한 인간관계, 신뢰감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자신들이 한인사회 지도자가 됐을 때 이루고 싶은 사업들로는 청소년 인턴십 기회 확대, 청소년들을 위한 스포츠 및 놀이문화 공간 조성, 한인 정치력 신장, 한국학교 교육개혁, 공립학교에 한국학 수업 개설 등 다양한 계획들이 제시됐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참석자>
권희정(미국명 실비아·헤릭스 고교 12학년)
김동영(미국명 제임스·스타이브센트 고교 12학년)
김미정(미국명 크리스틴·스타이브센트 고교 12학년)
필립 김(스타이브센트 고교 12학년)
로라 문(세인트 앤토니 고교 12학년)
윤원표(호레이스 그릴리 고교 12학년)
윤 준(미국명 제임스·테너플라이 고교 12학년)
이경로(미국명 브라이언·플레인뷰 올드베스페이지 고교 12학년)
최보연(미국명 바니·램지 고교 12학년)
함동우(미국명 스티븐·헤릭스 고교 12학년)
뉴욕·뉴저지 한인사회는 자라나는 1.5·2세 한인 청소년들을 ‘미래사회의 주역’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비단 미국과 글로벌사회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장차 한인 지역사회를 짊어질 재목이라는 점도 늘 강조한다. 하지만 과연 한인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이곳 한인 지역사회의 모습
은 어떤 것인지, 이들이 생각하는 한인사회 지도자들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가 올해 선발한 제23회 백상장학생 10명은 ‘한인사회와 나, 그리고 리더십’이란 주제로 13일 열린 좌담회에서 한인사회 지도자들에 전하고 싶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밝혔다.
평소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도는? 스스로 한인사회 구성원이라고 느끼나?
로라 문(이하 로라): 종교생활도 하지 않고 학교에 한인학생도 별로 없어 한인들과 접촉할 기회는 없지만 부모를 통해 평소 궁금한 한인사회 소식을 듣는 편이다.
이경로(이하 경로):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한인 학생을 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인 친구들과 교류가 많아지면서 한국문화도 가깝게 접하고 있고 한인기관의 유익한 프로그램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동영(이하 동영): 장애우 봉사활동에서부터 유권자 등록운동에 이르기까지 주로 한인기관에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한인사회를 이해하게 되면서 한인사회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필립 김(이하 필립): 영어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집에서 부모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어릴 때부터 교회와 학교에서 한인친구들과 지내며 성장하다보니 한인 지역사회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한인사회 봉사활동도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결코 아니다.
입학신청서에 첨부할 활동내역은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넘친다. 다만 그만큼 한인 2세들이 어른들이 가늠하는 것 이상으로 한인사회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한인기관을 자꾸 찾게 되는 것이다.
김미정(이하 미정):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베이사이드에 살면서 늘 주변에 한인들과 어울려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한인기관 프로그램도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늘 연관성을 느끼고 있다.
권희정(이하 희정): 장애우 봉사활동 등 한인기관을 통한 지역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한국어 대화 기회도 갖게 되면서 한인사회와의 연관성을 찾고 스스로 한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윤원표(이하 원표): 한인이 별로 없는 웨스트체스터에 살다보니 한인사회와 깊은 유대관계를 갖기 힘들고 솔직히 한인의 정체성을 잃기는 쉬운 환경이라 다소 아쉬움이 있다.
윤준(이하 준): 한인들이 많은 테너플라이에 살다보니 늘 한인사회의 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인들은 타인종과 서로 융화하는데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타인종과 보다 활발히 교류하며 한인사회를 가꿔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을 지역사회 ‘지도자’로 부르는 한인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인사회 역할모델이 있다면?
동영: 한인사회에는 역할모델이 많지 않다. 소수의 인물을 꼽을 수 있겠지만 사실 아주 찾기가 힘들다. 매년 우수한 한인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진학해 훌륭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지만 이들이 한인사회로 돌아와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일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점이 늘 아쉽다.
희정: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이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을 때 선거본부에서 만난 한인 이찬우 변호사의 열정적인 활동에 크게 감명했다. 이런 인물이야말로 지도자감이라고 본다.
함동우(이하 동우): 한인은 부모들이 아직 이민 1세대가 많아 이곳의 생활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것도 역할모델 부재의 원인일 수 있다. 지금은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는 목표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한인사회 차원에서도 지도자 양성에는 다소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신이 한인사회 지도자가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최보연(이하 보연): 영어권 한인 청소년들이 한인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청소년 신문을 만들고 싶다. 지금도 한국일보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뉴욕타임스 섹션 영문판을 발행해 한인사회 소식을 함께 싣고 있지만 지면을 더 많이 할애하면 좋겠다.
준: 고교 세계사 수업시간에 중국과 일본은 한 달씩 시간을 할애해 학습하는 반면 한국은 학생 프리젠테이션으로 끝나는 것을 보고 아주 많이 화가 났었다. 학생들에게 동양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알리도록 공립학교에 한국학 수업을 개설하고 싶다.
필립: 미국사회에서는 정치력 신장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한인들의 투표 참여를 이끄는데 노력해 한인들이, 그리고 한인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안들을 법안으로 현실화시키고 싶다.
경로: 미주한인청소년재단과 CK스포츠 등을 통해 다양한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맘껏 뛰어놀며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스포츠 공간을 늘리고 싶다.
원표: 내가 지도자가 된다면 타인종, 타문화와 서로 잘 융합되고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한인사회, 한인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로라: 한국 유학생들이 언어 문제 등으로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유학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싶다.
희정: 대학생이나 일반 성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 한인 대상 영어교실은 많은데 성인을 위한 한국어 교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미래의 한인사회와 미국, 나아가 글로벌 지도자가 되려면 스스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동우: 보이스카웃에서 이글 스카웃으로 활동하면서 풋볼 등 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갖고 있다. 이는 인적 네트웍 형성에 유익하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과 금세 친해져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대화의 기술과 더불어 적극적인 용기도 필요하다.
필립: 가능한 다방면의 활동에 최대한 참여 기회를 늘려야 하고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도움이 된다. 학교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지도자라면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동영: 직장이든 학교든 어느 위치에 있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희정: 사람을 다루는 기술도 아주 중요하다. 여러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 누구든지 나를 믿고 의지하고 따라오도록 신뢰감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준: 내가 배우고 익힌 것들을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나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를 고루 경험하고 익히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역량을 키우는 가장 큰 힘은 많은 사람을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뉴욕·뉴저지 한인사회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점은?
미정: 한국 방문 기회도 확대해주면 좋겠다. 과거에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한국을 응원하는 부모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뿌리교육재단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로라: 어릴 때 주말한국학교에 다녔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배웠던 기억이 없다. 커갈수록 한국어 실력을 유지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보연: 한국학교에서는 지나치게 문법 위주로 가르치는 경향이 많다. 잠시 캐나다에 살던 시절 학교에서 영어로 말하기를 먼저 배운 뒤에 쓰기와 읽기를 익혔었다. 한국학교들도 읽고 쓰기보다는 말하기 교육에 더욱 관심을 가져줬으면 더 재미난 수업이 될 것 같다.
동영: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인턴십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면 좋겠다. 몇몇 기관을 통해 인턴십 프로그램이 제공되긴 하지만 대부분 인턴에게는 서류복사나 파일정리 같은 단순한 업무를 맡기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망스럽다. 그보다는 제대로 해당 분야의 업무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면 좋겠다.
<진행 및 정리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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