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골드 룸’에서 포즈를 취한 에바 차우씨. 배경의 황금 빛 스크린은 아트데코 작가인 장 뒤낭의 ‘선라이즈 선셋 스크린’의 복제품으로 차우 부부는 오리지널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기증한 후 복제품으로 집안을 장식했다고 한다. <이은호 기자>
◀줄리앙 슈나벨이 그린 에바 차우의 초상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만든 이 웨딩드레스를 결혼식 때는 안 입고 초상을 그리기 위해 닷새 동안 입었다고 한다.
디자이너· 컬렉터로…
예술·예술인
패션디자이너로 90년초 할리웃 명성
천재 건축가 ‘미스터 차우’와 결혼
저택 전체가 예술품 “한인-라크마 가교”
에바 차우씨의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녀의 비서는 ‘미스터 차우’ 웹사이트(www.mrchow.com)에 미리 한번 들어가 보라고 말했다. 인터뷰 참고 차 몇 가지 정보를 얻으려고 사이트를 방문했을 때, 나는 너무 놀라서 한동안 사이트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에바 차우는 미국과 한국에서 이미 유명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미시즈 차우’이기 전에 ‘에바 전’(Eva Chun)으로 과거 할리웃과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패션 디자이너, 미국의 매거진들은 물론 한국의 여성 잡지들도 앞 다퉈 이 멋진 여성을 특집으로 소개했던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얼마나 많은 기사가 실렸는지 다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하고 드러매틱한 얘깃거리로 치자면 그녀 이상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신문 한 페이지론 어림도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쓰느라 여러 날 고민해야 했다. <정숙희 기자>
바로 이곳 베벌리힐스에서 스타보다 더 반짝이는 삶을 살고 있는 한인 여성을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왜 알지 못했을까? ‘미시즈 차우’라는 라스트 네임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일까? 하긴 라크마에서도 처음에는 그녀가 중국 여성이라고 주장했었으니까.
“미주 한인 언론과는 첫 인터뷰”라며 환한 미소로 맞아준 에바씨는 ‘프로’였다. 인터뷰에서나 사진촬영에서나, 그렇게 철저하고 완벽한 자기 관리로 오늘의 에바 차우가 된 그녀를 만났다.
▲디자이너 에바 전
자신을 ‘태생적 예술인’이라고 소개하는 에바씨는 일상의 삶, 매일 스물네 시간이 패션과 아트에 접목돼 있다. 그녀가 하는 일, 그녀가 입는 옷, 그녀가 사는 집, 그녀가 돌보는 가족, 모두가 예술이고 작품이다. 어쩌면 그녀가 예술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사는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예술이 돼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에바 전(희경)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 유명한 동양화가 이당 김은호와 소정 변관식 선생을 사사했다. 그 시절에 동양적인 심미안과 기초에 충실한 예인의 자세를 배웠다는 그녀는 18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에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모델 일을 하게 됐고 이어 영화계에 픽업됐으며 이후 5년간 제작분야에서 일하면서 할리웃 감독, 배우들과 많은 교분을 쌓았다.
그러나 좀 더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일에 대한 갈망을 가졌던 그녀는 영화계를 떠나 뉴욕 오티스 파슨스에 들어가 패션을 공부했다. 1988년 처음 내건 ‘에바 전’ 패션 레이블은 런칭하자마자 니만 마커스, 바니스 뉴욕, 버그도프 굿맨, I. 매그닌, 색스 핍스 애비뉴 등 고급 백화점에 전시되면서 무섭게 성장했으며 그녀의 옷은 보그, 하퍼스 바자, 인스타일, 배니티 페어 등 패션잡지들에 단골로 소개됐다.
니콜 키드먼, 킴 베이싱어가 즐겨 입었고, 1991년 오스카 시상식에 안젤리카 휴스턴과 멜라니 그리피스가 그녀의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았으며, 에바의 옷을 입은 데미 무어의 모습을 유명 사진작가 애니 라이보비츠가 찍어 배니티 페어에 실린 적도 있다.
그런 에바 전이 천재 건축가이며 유럽과 미국 예술계의 전설적 아이콘인 마이클 차우를 만난 것은 필연이요 운명이었다.
“베르사체가 주최한 파티에서 그를 처음 보았어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알렉산더 고두노프가 우리를 소개시켜 주었지요” 그렇게 연애가 시작돼 1992년 결혼했고, 94년 딸 에이시아(Asia)를 출산하면서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접었다.
▲남편 마이클 차우
최고급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Mr. Chow)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68년 런던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입한 정통 중식당을 오픈, 고급 요식업계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런던을 포함 뉴욕의 57가와 트리베카, 베벌리힐스에서 미스터 차우를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 중 라스베가스, 마이애미, 몬테카를로에 3개 식당을 더 오픈한다. 런던의 미스터 차우는 태동 때부터 유럽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아지트 역할을 했는데 현재 미국에서도 할리웃 스타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으로 꼽힌다.
▲뉴욕 매거진 2006년 5월호에 실린 마이클 차우의 사진.
하지만 그를 식당 재벌로만 표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배우, 아트 컬렉터… 한 마디로 예술과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조화된 삶의 전설적 표본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식당을 모두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홈비 힐스의 자택을 건축했으며, 베벌리힐스의 조지오 알마니 샵을 설계한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조지오 알마니가 뉴욕의 미스터 차우 식당 디자인에 반해 웨이터들을 위해 수십벌의 턱시도를 선물한 사건은 장안의 화제였다. 알마니는 88년 로데오 드라이브에 오픈한 알마니 부틱의 건축을 미스터 차우에게 맡겼고, 99년 라스베가스의 벨라지오 호텔 안에 새로 낸 알마니 부틱 역시 그의 작품이다.
▲미스터 & 미시즈 차우
마이클과 에바 차우 커플은 예술과 패션계, 할리웃과 오뜨쿠진 요식업계를 망라하는 상류사회에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독보적인 커플이다. 두 사람이 내뿜는 특별한 카리스마와 신비한 아우라는 백인 일색의 상류사회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화가들은 그들을 그리고 싶어 하고, 패션 디자이너들은 그녀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싶어 하며, 사진작가들은 그들을 찍고 싶어 한다. 클래식한 마스크에 동그란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인 미스터 차우와 시원한 동양적 미모에 도드라진 광대뼈가 매력인 에바 차우, 두 사람의 얼굴은 이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반드시 한번 그려보고 싶어 하는 상류사회의 아이콘이다.
미스터 차우와 절친하게 지낸 앤디 워홀, 데이빗 하크니, 장 미셸 바스키야, 피터 블레이크, 키이스 하링 같은 화가들이 그린 그의 초상이 무려 60여점이나 돼 1997~98년에는 이 초상화를 모은 순회 전시회가 뉴욕, 베벌리힐스, 파리, 런던에서 열리기도 했다. 20세기 후반의 세계적인 화가들이 한 사람의 초상을 각기 다른 모양으로 그린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본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에 전시회 자체가 대단한 화제였다고 한다.
에바 차우 역시 예술가들의 인기 서브젝이다. 팝 아티스트 피터 블레이크가 몇 년에 걸쳐 그녀를 그렸고,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만들어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에바를 줄리앙 슈나벨이 그린 초상은 저택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자리 잡고 있다.
▲홈비 힐스의 저택
인터뷰를 마친 후 에바씨의 안내로 둘러본 차우씨의 저택은 너무 대단해서 감탄도 잘 나오지 않았다. 기자이기 때문에 이런 집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을 정도였으니까.
모던 스패니시 팰리스 스타일로 3년반 전 완성한 집은 차우 부부가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해 7년 동안 건축했다고 한다. 환상적인 지하 와인셀라와 대형 연회를 치를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주방,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대저택으로 수영장이 딸린 게스트하우스, 공원처럼 잘 조경된 정원 등 시선이 가는 모든 풍경들이 마치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느껴졌다.
아트가 아닌 것은 그 집에 한 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두 사람의 어마어마한 아트 컬렉션에 맞춰 지어졌기 때문. 천장, 샹들리에, 문, 책상, 의자, 계단의 난간, 지붕에 얹은 기와까지 한마디로 건축의 모든 재료가 아트로서, 저택의 지붕을 덮고 있는 기와는 18세기 장인의 것들을 전 세계에서 모아들인 것이고, 천장은 16세기 골동품을 에바씨가 자기 손으로 세심하게 복원해 올렸으며, 15세기에 만들어진 태피스트리와 가구… 이런 것들이 이 집에서는 더 이상 컬렉션이 아니라 구조의 한 부분이다.
미술품은 물론이고 보석, 가구, 태피스트리 등의 큰 수집가인 차우 부부는 20세기 초 최고의 아트데코 가구 디자이너 에밀 자크 룰만의 가장 큰 컬렉터이기도 하여, 모든 베드룸의 가구는 물론 ‘룰만 라이브러리’로 이름 지어진 서재는 피아노를 포함한 가구 일체를 룰만의 것으로 꾸며놓았다.
귀족의 저택을 연상케 하는 홈비 힐스의 집에서 차우 부부가 여는 파티는 상류사회 최고의 연회로 각종 연예잡지를 장식하곤 한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홀과 회랑은 물론 옥상에서도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이곳서 열린 파티들은 매거진들에 단골로 소개되곤 한다.
▲라크마 이사
14세 딸이 있는 가정, 남편과 함께 경영하는 식당, 많은 노력과 지식과 열정이 요구되는 아트 컬렉팅, 자선사업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 가운데 라크마 이사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은 에바씨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한번 맡은 일에는 사회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 해내는 완벽주의자라는 뜻이다.
“마이클 고반과 함께 열심히 일해 볼 생각입니다. 계획이 많아요. 한인사회와 라크마를 연관시킬 수 있는 일이면 더욱 좋겠죠. 라크마는 한인, 미국인을 떠나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참여해야 할 미 서부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뮤지엄입니다. LA의 주민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내년 4월24일과 25일 라크마를 위해 커플당 수만달러짜리의 ‘컬렉터스 디너’를 그녀의 집에서 베풀 예정이라는 에바씨는 많은 한인들이 토탈 문화공간인 라크마를 자주 방문하고 이용할 것을 재차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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