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논설위원)
세월의 흐름은 막을 길이 없다. 사실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흘러가는 데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간다고도 말한다. 끝이 없는 세월. 세월은 곧 시간과 공간을 가리키는데 그 시간과 공간은 가는 듯 안 가는 듯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춘하추동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어 세월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인간들에게 주고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100년은 상당히 긴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수명이 100년을 넘지 못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월에 비하면 100년이란 시간과 공간은 그리 길지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잠깐이다. 화살같이 빨리 지나간다. 산천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만이 그렇게 빨리 지나감은 인간이 갖고 태어난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란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 인간이 태어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이었음은 알 수 있다. 수 만년 아니면 수 백 만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참 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인간이 예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부터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참 모습을 보기 시작한 때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즉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아챈 그 때부터가 진정 인류의 삶은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의 삶이 짧은 것을 알고 예술이란 모양을 통해 그 무엇인가를 남겨놓기를 바랐을 것이다. 인간을 현재로부터 영원 속으로 이어주게 하는 무엇을 인간들은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바로 종교다. 원래의 종교란 샤머니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들의 병이나 고통을 해결해 주려 하늘이나 또 다른 힘에 빌어 그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이 종교의 시작인 샤머니즘이다. 현재의 고통을 잊게 해 주려 시작된 종교의 시작은 점점 발전하여 고등종교에까지 이르게 된다.
고등종교는 인간에게 영원성을 추구하도록 해 준다. 인생은 짧지만 종교를 통해 영원한 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게 해 준다. 그것이 영적인 삶이든 육적인 삶이든 상관 하지 않는다. 종교를 통해 믿어지는 그 신앙은 종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합리화 될 수 없는 특수성을 갖고 있기에 종교란 믿음 안에서만 이야길 될 수가 있겠다. 종교든 예술이든, 인간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짧은가를 말해 주기도 한다. 종교와 예술과 더불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철학이다.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함’을 뜻한다. 사실 철학을 통하지 않는 종교와 예술은 알맹이 없는 빈 껍질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철학은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희랍의 서양 철학은 와이트 헤드의 과정철학으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동양은 공자와 맹자에서의 현실적인 철학이 있는가 하면 노자와 장자로 이어지는 자연주의 사상의 철학들도 있다. 그런데 모든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죽음, 세상의 종말 그리고 우주의 끝에서 그 닻을 내리게 됨을 보는 것 같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경제다. 경제란 밥과 같다. 밥은 곧 인간의 목숨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밥은 곧 하늘과 같다. 밥을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예술, 종교, 철학, 모두 다 좋으나 먹지 않고서는 못한다. 그러니 밥을 먹여주는 돈 같은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모든 예술, 종교,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이 무의미 해지는 세상이 요즘 세상인 것 같다.
또 현실로 돌아와 보자. 정치다. 매케인과 오바마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11월 4일, 미국대선. 사흘 남았다. 누가 미국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세계의 역사가 바뀐다.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8년 동안 철학도 없이 뚝심으로만 미국을 휘둘렀던 조지 W. 부시처럼 되면 미국은 또 이 모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미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되고 곧 2009년이 된다. 그러면 금방 4년이 지나가고 또 선거를 치룰 것이다. 이렇듯 반복되어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간다. 남는 것은 산천이다. 퀸즈와 맨하탄을 이어주는 퀸즈 보로 브리지를 건너면서 다리가 2009년이 되면 100년이 됨을 본다. 100년의 풍상을 견디어 온 그 다리를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로 지나갔으며 오늘도 지나고 있다. 다리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100년 동안은 또 다른 인간들이 지나가겠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늘어나는 주름들. 주름 속에 핀 철학과 종교와 예술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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