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수많은 이들의 머리를 지배해 온 욕구는 ‘조금 더 부자되기’였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도 조금 더 많이 갖고,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더 불리는 일에 온통 신경을 쏟아 왔다. 그러더니 가지고 있던 것마저 이미 날려 버렸거나 날릴지도 모르는 ‘위기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귀염성 넘치는 얼굴의 여자 탤런트가 한껏 웃음 띤 얼굴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내용의 한국의 크레딧 카드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외침의 메아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한국은 미증유의 카드대란을 겪어야 했다.
당시 벤처 광풍과 맞물린 대박 환상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벌써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크레딧 카드 회사들이 마구 떠안기는 카드로 지갑을 두둑하게 채운 채 이를 물 쓰듯 사용했다. 그 결과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의 덫에 걸려 버렸다. 광고 속 대사처럼 정말 부자가 된 사람은 CF 몸값이 폭등한 그 여자 탤런트 한 사람 뿐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다.
광고의 영향으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신년 덕담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고 한동안 ‘10억만들기’라는 요상한 프로젝트가 사회를 휩쓸기도 했다. 간혹 이런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언론과 책을 통해 소개되고 많은 이들은 이것을 부러워했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은 초조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돈을 잘 굴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금융문맹’이다 뭐다 해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간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 재산증식 테크닉, 이른바 ‘재테크’이다. 재산을 불려 준다는 온갖 기법과 방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의 조언과 성공담이 책으로 만들어져 나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런데 재테크라는 것을 가만 들여다보면 주식과 부동산에 편중돼 있다.
이런 재테크는 허술한 내용도 문제지만 위험하기까지 하다. 생산성이 뒷받침 되지 않은 소득증가는 대개 누군가의 손실이 다른 이의 이익이 되는 제로섬을 뜻한다. 한 사람의 웃음 뒤에 다른 이의 눈물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여자 탤런트가 환한 미소로 외쳐댄 덕담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기만의 혐의가 농후하다. ‘테크닉’이란 어휘 자체도 땀과 성실 같은 전통적 덕목과는 거리가 있다.
‘재테크 열풍’은 정말 부족해서가 아니라, 웬만해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속성이 초래한 사회적 현상이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물질문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단한 수준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요즘 어느 집이나 세탁기와 디시워셔, 그리고 진공청소기 정도는 갖추고 산다. 한 집에 자동차가 여러 대인 경우가 보통이고 그 밖에 문명의 이기들이 제공하는 온갖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대부분 현대 가정은 과거 28명의 하인을 집안에 두고 있던 사람들이 누리던 삶의 수준을 살고 있다는 어떤 학자의 지적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과거보다 훨씬 살기가 나아졌음에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무엇인가 모자란 듯한 결핍감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왜 그럴까. ‘필요’라는 절대적 입장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바라보지 않고 자꾸 다른 이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가진 것이 턱없이 적어 보이는 것이다. 의식조사를 해 보면 경제수준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소득이 지금의 두 배는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조금 더, 조금 더” 할 수밖에.
또 미래에 대한 불안감, 특히 급작스런 붕괴에 대한 불안이 이를 부추긴다. 붕괴 불안은 9.11테러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렸다. 언젠가 시스템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불리고 늘려 놓자는 욕심을 부채질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붕괴 불안 때문에 모으고 불리기에 더욱 골몰해 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진짜 붕괴에 의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현재의 금융위기는 늘리는데 치중하는 재테크의 위험과 한계를 확인시켰다. 가지고 있는 것을 견실히 지킬 줄 아는 것이야 말로 현명한 재테크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특히 상황이 불확실하고 휘발성이 높은 때일수록 이런 인식은 더욱 필요하다. 지금처럼 자산 가치가 하락할 때는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해도 곧 실질적인 증식을 의미한다.
IMF의 추억에 매몰된 채 환차익을 노려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모아 한국으로 보내고 있는 일부 한인들의 올인 행태가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 같은 때는 어설픈 재테크보다 금융문맹이 오히려 현명해 보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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