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시리즈 5차전 6회초 뒤 중단…잔여이닝 속개경기
3승1패 필리스, 1회말 2점 선취했으나 4회와 6회에 한점씩 허용
1승3패 레이스, 도합 31타수 0안타의 페냐와 롱고리아 막판회생
27일 오후 5시(이하 SF시간) 조금 넘어 펜실배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시티즌스 뱅크 팍에서 시작된 2008년 월드시리즈 5차전. 4만5,000여석을 가득 메우고도 남는 초만원 관중들이 함성과 몸짓으로 승부열은 시구 이전부터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1승만 더 거두면 창단 이래 두 번째이자 1980년 이후 28년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복귀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뒷일을 알 수 없는 플로리다로 가지 않고 홈구장에서 왕중왕 대관식까지 끝내버리려고 5차전 뚜껑이 열리자마자 2점을 뽑으며 기세를 올렸다. 1패만 더 당하면 창단 이래 첫 도전 첫 우승의 꿈이 물거품되는 탬파베이 레이스는 어떻게든 5차전을 이겨놓고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홈구장으로 옮겨 모든 것을 뒤바꿔놓겠다는 결기를 모아 4회초에 1점, 6회초에 1점을 따라붙어 기어이 전광판을 균형을 찾았다.
긴장은 더욱 팽팽해졌다.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싱거운 잔치가 될 뻔했던 2008년 가을의 클래식은 이제서야 맵고 짜고 달게 본격적인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누가 이기든 7차전까지만 가다오, 하고 바랐던 이들에겐 비로소 볼만한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막 클라이맥스로 향하던 5차전의 열기는 그러나 거기서 일단 식었다. 세차게 쏟아진 비 때문이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도무지 기세가 꺾이지 않은 장대비에 홈플레이트 엄파이어(구심/제프 켈로그)는 서스펜디드 게임(suspended game)을 선언했다. 6회초까지 마친 가운데 스코어는 2대2.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8일 오후 5시에 같은 장소에서 6회말부터 속개하겠다고 ‘일단’ 발표했다.
▶이번 5차전은 월드시리즈 사상 최초의 서스펜디드 게임이다. 서스펜디드 게임은 경기종료가 아니라 일시중단 게임이다. 중단될 때까지의 이닝과 점수를 인정하고 중단요인이 해소된 날(주로 이튿날) 다음 이닝부터 경기를 속개한다.
우열을 가리지 못한 가운데 도중에 (중단이 아니라) 종료되고 무승부로 처리된 월드시리즈 경기는 3차례 있었다. 모두 다 야간조명 경기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시절에 일몰 뒤 어두움 때문에 생긴 것이다. 타이거스와 컵스가 맞붙은 1907년 월드시리즈 1차전은 연장 12회까지 3대3인 상황에서, 자이언츠와 레드삭스가 격돌한 1912년 월드시리즈 2차전은 연장 11회까지 6대6인 상황에서, 자이언츠와 양키스가 맞짱을 뜬 1922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3대3인 상황에서 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지는 바람에 무승부로 처리됐다.
한편 어슬래틱스(A’s)와 자이언츠가 겨루기를 벌인 1911년 월드시리즈 4차전은 경기를 앞두고 내린 세찬 비 때문에 아예 열리지도 못하고 6일동안 연기됐었다. 경기장소는 이번과 같이 A’s의 당시 홈구장이었던 필라델피아였다.
▶필리스는 이번 5차전에서 6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2대1로 앞서고 있었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필리스는 6회 직전까지 리드한 경기에서 65승7패의 압도적 승율을 보여줬다. 6회 이후에는 좀체 역전패를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올해 세이브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브랫 리지 등 든든한 불펜투수들 덕분에 필리스의 뒷심이 좋기 때문이다. 반면 레이스는 6회 직전까지 리드당한 경기에서 18승55패를 기록했다. 6회 이후 역전승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간과해선 안될 변수는 있다. 필리스 입장에서는 이날 선발로 나선 ‘믿을 손’ 콜 해멀스를 잔여이닝 처리를 위한 속개경기에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고, 레이스 입장에서는 그 고약한 해멀스를 피하고 남은 3이닝(연장까지 가지 않을 경우)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마침표를 찍지 못했지만 5차전은 초반부터 불을 뿜었다. 양팀 코칭스탭은 선발투수로 필스카드를 꺼내들었다. 3승1패로 앞선 홈팀 필리스는 디비전 시리즈 1차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승리를 따낸 좌완 에이스 콜 해멀스를 투입했다. 로테이션 순서와 맞물린 것이긴 하지만, 원정구장에서 벌어질 6, 7차전까지 갈 것 없이 홈구장에서 끝장을 내겠다는 의지였다. 레이스의 선발마운드는 올해 올스타투수인 스캇 캐즈미어가 지켰다. 해멀스는 또 해멀스답게 튼튼피칭을 과시하며 6이닝동안 5안타 2실점으로 막아냈고, 캐즈미어는 다시 캐즈미어답지 않게 불안피칭을 노출하며 4이닝동안 4안타 6볼넷으로 2실점을 내주고 조기에 강판됐다.
선취점은 필리스의 몫이었다. 1회말, 레이스 선발 캐즈미어의 고질적인 1회 부진 징크스는 지면 끝장인 이날 경기에서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1사후 제이슨 워스에게 볼넷, 체이스 어틀리에게 몸맞는 공. 필리스는 안타 하나 없이 1사 1,2루. 캐즈미어는 3, 4차전에서 3홈런을 작렬한 올해의 홈런왕 라이언 하워드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한숨을 돌리는 듯했으나 그 다음 팻 버렐에게 또다시 볼넷. 1사 만루의 황금기회에 타석에 등장한 셰인 빅토리노는 좌익수쪽에 깨끗한 안타를 터뜨려 2타점을 올렸다. 필리스의 기회는 계속됐다. 페드로 펠리스의 좌전안타로 다시 만루. 그러나 카를로스 루이스가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필리스는 더 도망가지 못하고 첫 공세를 마쳤다.
2회초부터 3회말까지 점수없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4회초, 레이스의 반격이 비로소 열매를 맺었다. 이번 월드시리즈 내내 득점타는 고사하고 점수와 상관없는 안타 하나도 못때리고 타석과 덕아웃을 걸어서 왕복했던 카를로스 페냐가 월드시리즈 14타수 무안타의 침묵을 깨고 오른쪽 담장 상단을 때리는 2루타를 쳤다. 다음 타자는 루키3루수 에반 롱고리아.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찜해둔 것이나 다름없는 롱고리아는 정규시즌 맹활약의 여세를 몰아 디비전 시리즈와 리그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정교하고 힘넘치는 타력을 뽐냈으나 월드시리즈에 접어들자 물방망이로 돌변, 17타수 무안타에 허덕인 터였다. 동변상련 페냐가 기나긴 안타불임을 끝내고 2루타를 생산하자 롱고리아도 덩달아 깨어난 듯 중전적시타를 터뜨려 페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2대1. 굵어진 빗줄기 속에서 둘은 안타가뭄 해갈 단비안타를 때린 기쁨에 어쩔 줄 몰라했다. 비는 더욱 굵어졌다.
필리스는 4회말 더 달아날 기회를 잡았다. 1회 만루기회에 플라이로 물러났던 루이스가 좌전안타를 치고, 지미 롤린스와 제이슨 워스가 볼넷을 골라 엮여진 2사 만루 상황에서 체이스 어틀리가 2루수쪽 땅볼로 물러났다. 필리스는 5회말에 더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선두타자 라이언 하워드와 후속타자 팻 버렐이 연속 볼넷을 골라 무사 1, 2루가 됐다. 번트로 진루시키고 외야플라이나 코스좋은 내야땅볼만 추가되면 최소한 1점을 더 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빅토리노, 펠리스, 루이스가 바뀐 투수 그랜트 밸포어의 피칭에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줄줄이 1루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위기 뒤에 기회, 기회 뒤에 위기. 5회말 기회를 놓친 필리스는 6회초 위기를 맞았다. 5회말 위기를 넘긴 레이스는 6회초 기회를 맞았다. 2사후. 유격수쪽 내야안타로 출루한 B.J. 업튼이 빠른 발을 이용해 빗속에 미끄러지듯 2루를 훔쳤다. 그리고 곧바로 페냐의 좌전안타가 터졌다. 업튼은 홈으로 미끄러운 가운데서도 홈까지 안전하게 치달았다. 2대2. 14타수 무안타 뒤에 2연타석 안타를 치고 득점타까지 올린 페냐는 주먹으로 펌프질을 하며 포효했다. 그런 와중에 필리스 포수 루이스가 투수 해멀스의 공을 빠뜨렸다. 페냐는 2루까지 전진했다. 후속타자 롱고리아의 2연타석 안타야심은 충족되지 않았다.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 이닝 끝.
그러나 페냐와 롱고리아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도합 31타수 무안타 행진을 끝내자마자 6타수 3안타 2타점을 올리며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비는 걷잡을 수 없이 거세졌다. 구심은 결국 경기중단을 선언했다. 비는 벼랑에 선 레이스의 기사회생 상승세를 막은 것일까, 곧바로 타올랐을지 모를 필리스의 재공세 불길에 미리 찬물을 부어버린 것일까.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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