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결코 같을 수가 없다’-. 미국의 심장부가 테러공격을 당했다. 한 낮 테러리스트의 자살공격에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주저앉았다. 전 미국이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 날은 2001년 9월11일이다.
그리고 꼭 7년 후. 한 가지 질문이 다시 던져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같을 수 있을까’-. 월스트릿을 진앙으로 한 금융위기가 거대한 쓰나미가 돼 전 지구촌을 흔들면서 제기되는 질문이다.
금융위기는 경제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지구촌의 국제질서와 정치·외교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기적 금융위기는 항상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경제위기는 그리고 곧잘 정치적 격동사태를 불러온다. 내셔널리즘의 광풍이다. 근·현대사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으로 오늘날의 상황은 대공황 이후 1930년대를 연상시킨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뉴 스테이츠맨’의 보도다. 상당히 암울한 시각에서 ‘금융위기 이후’를 내다보았다. 자칫 전 세계는 보호주의와 민족주의의 격랑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반(反)자유무역의 기수가 되다시피 했다. 이탈리아의 재무장관 지울리오 트레모니도 하룻밤 사이 유명해졌다. 황화(黃禍·주로 중국을 의미)의 거센 물결과 ‘무슬림군단의 침공’에 굳게 맞서는 ‘유럽 성채론’을 주창한 책을 펴냈던 것이다.” 이 잡지가 전하는 유럽의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 주장이라는 게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너무 흡사하다. 그런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고 또 갈채를 받고 있다. 극우 민족주의 대두와 함께 반(反) 이민정서가 유럽에서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주범은 금융위기다. 공포지수가 높아지면서 경제적으로, 또 정치·사회적으로 배타주의가 확산되면서 내셔널리즘이 유럽에서 새삼 대두되고 있다는 경고다.
중국·인도·러시아 등 이른바 ‘이머징 마켓’으로 불리는 ‘국가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우 상황은 더 안 좋다. 그 쓰나미 피해가 여간 큰 게 아니다. 뉴욕의 주가가 25% 빠졌을 때 러시아의 주가는 61% 이상 떨어졌다.
중국이 맞은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의 국영기업체(S0E)들은 하나같이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이다.
중국 경제는 외국자본과 해외시장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중국에서 경제성장은 지상과제다. 체제 유지와 직결돼 있다. 경제침체는 때문에 대대적인 농민폭동이나, 정치적 불안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국가 자본주의 나라들은 통상을 국가정책의 도구로만 볼 뿐이다. 무역을 통한 상호발전 개념이란 것은 없다. 때문에 언제라도 다자간 협상 같은 건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러면 무엇을 의미할까. 금융위기 이후의 세상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WTO, IMF 등 국제기구들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유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세계는 몇 개의 고립된 파워 블록으로 나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미, 유럽연합, 러시아, 중국 등을 각각 핵으로 하는.
더 불길한 전망은 ‘이머징 마켓’으로 분류되는 권위주의형 나라들이 경제적 위기를 맞을 때 지역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문제가 생길 때 그 호도책으로 외부적 모험을 감행한다. 중국, 러시아 등 국가 자본주의 체제가 보여 온 속성으로,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이 그 한 예다
이 같은 전망들에는 그러나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이 크게 축소됐을 경우’라는 단서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시대가 끝났을 때’라는 단서다.
2008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 관심이 쏠린 것도 같은 이유다. 깊은 내상을 입은 미국이 결국 세계무대 전면에서 스스로 내려올지, 아니면 빠른 상처회복과 함께 여전히 지도력을 발휘할지, 그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미국은 특유의 대선방식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특출한 지도자를 선출해 왔다. 지적으로나, 용기에 있어서나. 또 경험에 있어서나 위기 해결에 적합한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해 맞이하는 행운을 누려왔다.
그 행운이 과연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미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초조히 미국의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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