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좌완 멀더를 영입하려고 뭉칫돈 펑펑 써가면서
새싹우완 블랜턴을 써먹지도 않고 덤으로 보냈는데
블랜턴은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서고
멀더는 십리도 못가 팔병 나 못쓰고
▶야구는 팀경기다. 투수도 타석에 나서는 내셔널리그(NL)에서는 9명이 한팀을 이룬다. 투수 대신 지명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아메리칸리그(AL)에서는 10명이 한팀이다. AL 챔피언과 NL 챔피언이 벌이는 월드 시리즈는 섞어찌개식이다. NL 챔피언의 홈구장에서 붙을 때는 NL식으로, AL 챔피언의 홈구장에서 붙을 때는 AL식으로 경기를 펼친다.
올해 메이저리그 왕중왕을 가리는 월드 시리즈는 22일 오후 AL 챔피언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에서 AL 방식으로 시작됐다. 상대는 NL 챔피언 필라델피아 필리스다. 1,2차전은 AL 방식으로 레이스 홈구장에서, 3,4,5차전은 NL 방식으로 필리스 홈구장에서, 6,7차전은 다시 AL 방식으로 레이스 홈구장에서 열린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월드 시리즈 역시 7전4선승제이므로, 어느 한 팀이 먼저 4승을 거두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 기사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얘기지만, 미국과 캐나다에 본거지를 둔 메이저리그의 왕중왕을 뽑으면서 월드 시리즈란 용어를 쓰는 것은 미국의 패권적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는 비판도 있음을 밝혀둔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야구는 팀경기란 첫머리 정의를 뒤집는 이 말은 투수의 비중이 그만큼 높은 까닭에 나왔다. 특히 선발투수의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 으뜸패가 거의 공개된 상태에서 경기를 벌인다는 것이, 패를 감추고 치는 여느 노름판 승부와 다른 야구의 별미다. 피말리는 승부에서 으뜸패 공개(예고) 제도가 뿌리내린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주먹구구 승부시대를 지나 스포츠과학이 도입되면서 선발투수의 경우 일정기간(대개 나흘) 휴식을 취한 뒤 등판해서 일정피칭(대개 100개)을 해야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이 통계로 거듭 확인된 때문이다. 둘째는, 위와 같은 과학과 통계에 입각한 선발투수 로테이션이 대세를 이뤄 어차피 다음에 누가 나올 것인지 거의 뻔한 상황에서, 아예 선발투수를 예고함으로써 팬들의 ‘안정된 관심’을 끌기 위한 유인책이기도 하다.
▶이번 월드 시리즈에서 양보없는 승부를 벌일 레이스와 필리스도 일찌감치 선발투수 패를 몽땅 공개했다. 그중 한명 조 블랜턴, 필리스가 4차전 선발투수로 예고한 우완투수다. 5년 전 오클랜드 A’s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그는 잠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갔다가 되돌아와 A’s 마운드를 지키다 올해 여름 트레이드돼 필라델피아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A’s에 남았다면 꿈도 못꿨을 월드 시리즈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A’s는 월드 시리즈는 고사하고 포스트 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9월말에 2008 야구농사를 종쳤다. 남들은 가을 풍년을 위해 전력보강에 막바지 열을 올리던 한여름에 블랜턴을 내보낸 것부터가 A’s의 흉년2008을 대변한다. 이 점에서 보면, A’s가 전반기 막판에 특급에이스 리치 하든을 시카고 컵스로 팔았을 때 이미 A’s의 올해농사 포기속내는 읽혀졌다.
블랜턴, A’s, 카디널스.
언뜻 불연속점 같은 그 이름들을 선으로 잇다보면 또다른 투수의 이름이 잡힌다. 마크 멀더다. 한때 메이저리그 최고 좌완투수 대열에 들었던 거구의 멋쟁이 투수다. A’s에 있다 3년 전에 카디널스로 간 그는 올해 월드 시리즈 개막을 하루 앞둔 21일 카디널스구단으로부터 사실상 버림을 받았다.
(멀더에게) 옵션을 포기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최종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카디널스의 잔 모젤리악 단장이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뒷말은 예의상 덧붙인 것이다. 액센트는 앞말에 있다. 구단의 옵션포기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카디널스와 멀더가 맺은 동거계약은 일단 올해까지는 의무다. 멀더는, 잘했을 경우, 몸값을 확 불릴 수 있는 프리에이전트(FA)가 된다.
잘하는 선수를 선뜻 내줄 구단이 있을까. 그래서다. 구단과 선수는 계약서에 옵션을 달아놓는 경우가 많다. 의무동거가 끝난 뒤 구단이 그 선수와의 동거를 계속하고 싶으면 옵션을 행사한다. 단, 이때 연봉은 의무동거 기간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는 게 상례다. 잘했을 경우에 다른 팀에 내주지 않으려고 달아놓는 옵션이니 당연하다. 선수에게 잘하도록 독려하는 당근조항이 될 수도 있다. 선수에게 불리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옵션을 지렛대로 의무동기 기간의 연봉협상에서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 결국 옵션은 구단 입장에선 잘할 경우 계약연장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선수 입장에선 애초에 의무동거를 늘리자는 구단에게 동거연장의 여지(우선권)를 주면서 입단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도구다.
▶멀더의 올해 연봉은 700만달러다. 내년 1년동안의 옵션 연봉은 1,100만달러다. 카디널스구단의 옵션포기는 1,100만달러를 줘가면서 멀더와 1년 더 한식구가 될 생각이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이혼통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덩이라고 판단하고 영입한 멀더가 부상치레에 시달리느라 카디널스에서 몸값을 못했기 때문이다.
A’s에 있을 당시 사이영상 유력후보로 오르내릴 만큼 날렸던 멀더는 올해 고작 3게임(선발등판은 그중 1차례)에 나와 승패없이 방어율 10.80을 기록했다. 작년에는 패배만 3차례 당하며 방어율은 12.27이나 됐다. 2006년에는 6승7패였다. 카디널스와의 동거 첫해인 2005년에만 16승8패(방어율3.64)로 그럭저럭 이름값을 했을 뿐이다.
이유는 부상이다. 멀더의 부상은 실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2004년 시즌을 마치고 04-05 겨울 트레이드 시장에서 카디널스로 이적할 때 그의 어깨에는 황색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카디널스도 멀더도 회복을 믿었고, 그것을 전제로 계약을 맺었다. 멀더는 2005년 중반까지 순항하며 역시 멀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어깨가 결국 말썽을 일으키면서 멀더피칭은 급전직하, 카디널스와 멀더의 만남은 아주 잘못된 만남이 돼갔고 마침내 싸늘한 결별에 이르게 됐다. 모젤리악 단장은 우리는 이제 건강에 문제없는 투수를 찾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말로 고장난 멀더를 영입했다 낭패를 본 속쓰림을 토해냈다. 상대타자들을 압도하던 공포의 좌완투수에서 이제는 왼쪽 어깨 회전근이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아 사이드암 투수 비슷하게 어정쩡한 피칭에 의존하는 멀더는 서른한살 한창 나이에 고장난 어깨로 새 정처를 찾아나서든지 은퇴를 하든지 해야 하는 신세다. 지난 3년 내내 6승10패에 그친 멀더의 부활을 믿고 손을 내밀어줄 구단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스물입곱 조 블랜턴은 멀더가 한창 주가를 올리며 A’s에서 마지막 해를 보낸 2004년에 A’s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실은 카디널스가 멀더를 영입하기 위해 유망주 블랜턴을 써먹지도 않고 덤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데뷔 시즌 막판에 3차례(총 8이닝) 시험등판에서 승패없이 방어율 5.63. 가능성을 인정받은 블랜턴은 이듬해부터 A’s 마운드의 레귤러 멤버가 됐다.
왼발을 들어올리며 오른손을 허리춤 아래 허벅지쯤까지 내리다 잠시 뜸을 들여던지는 약간 펑키 스타일 피칭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그는 멀더가 죽을 쑤는 동안 쑥쑥 자라났다. 2005년 12승12패(방어율 3.53), 2006년 16승12패(방어율 4.82), 2007년 14승10패(방어율 3.95). 카디널스로서는 금싸라기 유망주를 거저 내주고 고장난 멀더를 고가에 사들인 꼴이 됐다.
블랜턴의 2008년은 오클랜드와 필라델피아 거리만큼 폭이 컸다. A’s에 있을 동안에는 지지리 타선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구위까지 흔들려 20경기에서 5승12패(방어율 4.96)에 그쳤다. 그랬던 그가 필리스로 간 뒤에는 훨 좋아져 13경기에서 4승무패(방어율 4.20)를 기록했다. 포스트 시즌 성적은 더욱 좋다. 지난 5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6이닝동안 5안타 1실점(0볼넷 7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13일 LA 다저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경기에서는 다소 부진(5이닝 7안타 3실점)늘 빈약한 타선지원에 한숨을 지었던 그답지 않게 두둑한 타선지원으로 패전을 면하는 행운까지 누렸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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