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단 한 번도 정치자금을 기부해 본 일이 없었던 이민 1세 어르신께서 버락 오바마 캠페인에 100달러를 기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하신 이유를 여쭤봤더니 이런 답변을 들려주신다. 첫 흑인 대통령을 당선시켜 앞으로 어르신의 2살 된 손자도 소수민족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는 뜻에서라는 것이다.
이 답변에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곰곰 생각해보면 오바마 후보가 미국인들과 소수민족인 한인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안겨 주고 있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이민국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미국이라는 땅에서 대선에 소수민족이 나와서 당선될 가능성을 보인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인종차별이 깊게 뿌리박혀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이민자들은 많다. 우리 한인사회만 보더라도 무에서 시작하여 피난 노력 끝에 이제는 잘 살게 된 사람들이 많다.
오바마 역시 이민자로서 “하면 된다”는 정신력으로 무에서 시작하여 하바드 법대 등 명문대학들을 거쳐 많은 노력 끝에 현재의 역사적인 시점까지 도달했다. 오바마의 등장이야말로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오바마 후보를 단지 소수민족들의 대변인으로만 본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그는 ‘흑인 대통령’도 아니고 ‘소수민족 대통령’도 아닌 가장 유능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바마는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요한 이슈를 이해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국민 대통령’이며, 무엇보다도 현재 풍비박산이 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경력을 거론하기 이전에 일단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더 나아가 세계를 보자. 가장 근본적으로 일단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고달프다. 금융기관들이 정부규제 없이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한테 융자를 주고 부동산 투자관련 고위험 자산을 사들여 오늘날의 경제난을 야기하지 않았는가. 은행들이 쓰러지는 모습과 미국정부가 이들을 살리려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1997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월스트릿 저널 기자였던 필자는 한국이 부채 상환을 못하여 IMF가 개입하는 것을 취재하면서, 한국경제가 그 지경이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부관여가 너무 심하고 정부가 자유시장 원리에 걸맞지 않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월가 분석가들과 미국 경제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쓰러지는 기업은 쓰러지게 놔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 미국정부는 그 순리를 따르지 않았다. 큰 기업들에게 세제 해택을 제공했고 기업 감사를 기업인 출신에게 맡긴채(고양이한테 가게를 맡긴 셈이다) 망해야 할 기업과 금융기관들을 살렸다.
또한 4,000여명이 사망한 이라크 전쟁은 더 이상 우리 젊은이들의 생명과 귀중한 세금을 빼앗아 가면 안 된다. 이라크 전쟁에 수천억 달러를 소요한 지금 미국은 과연 더 안전해 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지경에 이른 현 정부의 성적표를 봤을 때 백악관에 엄청난 변화와 개혁이 들어서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미국 내의 흑인의 대한 선입견 때문에 레이스는 막상막하의 판세로 펼쳐지고 있다.
행여나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서인지 오바마를 향한 비난은 인종을 빗겨가면서 어처구니없게도 학력을 트집 잡는다. “너무 엘리트주의적이다” 혹은 “잘난척 한다”, 아니면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텐데 왜 이리 서두르느냐”는 등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이다. 이는 공화당 후보의 젊은 시절 나쁜 성적 자랑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게 될 지 걱정스럽다 언제부터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 나온 게 흠이 됐는가.
인격적으로나 경력을 봐서나 오바마는 그 어떤 후보보다도 뛰어나다.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게 리더십이며 참모들을 잘 선택하는 능력이다. 매케인은 부통령 후보로 인생에서 겨우 두번 만난 페일린 주지사를 임명했다. 그녀의 어설픈 경력이나 엉망인 인터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허술한 방법으로 부통령 후보를 결정한 매케인의 판단력에 의문이 간다.
부통령 후보로 오랜 국제관계 경력과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역사적인 법안을 주도한 장본인인 상원의원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뽑았다는 것은 오바마의 선견지명을 보여주며 우리가 현재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국민을 위한 정부를 꾸려나갈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을 가져다준다.
미국 대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피부색을 떠나 실력과 경력, 인격 등에서 대통령 자격이 있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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