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CS 5차전서 5대1 승리…4승1패
2승 안긴 좌완선발 콜 해멀스 MVP 영광
박찬호, 3회 긴급출동 깔끔진화 무위
퍼칼, 1이닝 3에러 등 안풀린 다저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또 이겼다. LA 다저스가 다 졌다. 2008년 내셔널리그 챔피언 트로피와 월드시리즈행 티켓은 필리스 차지가 됐다.
NL 이스트 디비전 1위 필리스는 15일 LA 다저스테디엄에서 벌어진 웨스트 디비전 1위 다저스와의 리그챔피언십(NLCS) 5차전에서 선발투수 콜 해멀스의 빼어난 피칭과 지미 롤린스, 라이언 하워드 등 타자들의 응집력있는 배팅으로 5대1 낙승을 거뒀다.
필리스는 이로써 4승1패로 7전4선승제 NLCS를 끝내며 1993년 이후 15년만에 내셔널리그 최고봉에 올랐다. 1980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8년만의 챔피언 트로피 탈환을 노리는 필리스는 오는 22일(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과 7전4선승제 월드시리즈에 돌입한다.
필리스는 이날 경기를 포함해 8회까지 리드한 경기에서는 86승0패라는 경이적 뒷심을 자랑했다. 필리스가 월드시리즈에 오른 것은 모두 7차례고, 그중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1980년이 유일하다.
▶’롤링’ 롤린스 신기록 선제홈런 = 81세 노장다저 타미 라소다 전 감독의 시구로 점화된 이날 경기는 오늘만은 꼭 이겨다오 하는 5만6,000여 만원관중의 열망과는 달리 첫 뚜껑이 열리자마자 필리스쪽에 윙크를 보냈다. 필리스 선두타자 지미 롤린스가 다저스 선발투수 채드 빌링슬리의 조심스런 승부구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롤린스의 이번 포스트시즌 2번째 겸 통산 3번째 포스트시즌 리드오프 홈런이었다. 같은 해 포스트시즌에서 1회초 리드오프 홈런(1회초 선두타자 홈런)을 2차례 친 것도, 포스트시즌 통산 3차례 리드오프 홈런을 친 것도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롤린스가 유일하다.
다저스의 저항은 허망했다. 1회말엔 3번타자 매리 라미레스가 2사후 볼넷을 골랐으나 후속타가 없었고, 2회말엔 선두타자 로우니가 중전안타를 치고 블레익(우익수 플라이 아웃) 건너 켐프가 우전안타를 쳐 1사 1, 2루가 됐으나 뒤이은 데윗의 2루수쪽 땅볼이 병살타로 연결되는 바람에 만회기회를 날렸다.
▶필리스 뭇매에 빌링슬리 넉아웃 = 위기를 넘긴 필리스는 곧 본때를 보였다. 3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투수 해멀스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뒤 1회초 리드오프 홈런의 사나이 롤린스가 이번에는 볼넷을 골랐다. 선구안도 좋았지만 다저스 선발투수 빌링슬리가 1회의 상처 때문에 간이 졸였는지 좀체 스트라익존에 볼을 뿌리지 못했다. 그리고 피칭 때면 거의 매번 망설였다. 그런 빈틈을 찔러 발빠른 롤린스는 번개같이 2루를 점령했다. 후속타자 제이슨 워스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필리스의 기회도 다저스의 위기도 함께 날아가는 듯했다. 아니었다. 까다로운 타자 체이스 어틀 리가 칠 듯 칠 듯 치지 않으면서 볼넷을 골라냈다.
산 넘어 산. 올해의 홈런왕 라이언 하워드가 거구를 이끌고 왼쪽 타석에 들어서더니 부드럽게 잡아끄는 방망이질로 우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2대0. 주자는 다시 1,3루. 팻 버렐도 우익수 진영으로 적시타를 날렸다. 3대0. 한숨 돌릴 겨를이 없었다. 빌링슬리의 다음 상대는 셰인 빅토리노.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만 11타점을 올린 RBI가이 빅토리노와 맞짱을 뜰 엄두를 못내고 고의사구로 걸려보냈다.
▶긴급투입 박찬호 깔끔한 진화작업 = 그리고 조 토리 감독이 마운드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빌링슬리는 또다시 3이닝을 채우지 못한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덕아웃으로 물러났다. 빌링슬리가 남겨놓은 부채 2사만루. 몸을 푸는 듯 마는 듯 부랴부랴 투입된 박찬호는 유난히 검은 구렛나루 사나이 페드로 펠리스에게 한복판에서 살짝 휘어지는 초구 스트라익을 잡은 뒤 공 한개 정도 더 빠진 유인구로 유격수앞 땅볼을 유도, 더 이상 상처없이 진화임무를 완수했다. 그가 던진 공은 2개였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2008찬호피칭의 마지막이었다. 토리 감독은 4회부터 박찬호 대신 노장 그렉 매덕스를 투입했다. 이를 두고 한국언론은 늘 그렇듯이 거창하게 부풀린 ‘미 언론’을 빌어 박찬호의 조기퇴역은 토리 감독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식으로 질타했다.
그러나 박찬호 피칭이 부가가치를 더하려면 동점 내지 1점차의 아슬아슬 승부일 때 이날처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박찬호는 이날 경기를 포함해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3차례 등판해 1.1이닝동안 1안타 1볼넷 0실점으로 기록상 괜찮으나 근접승부였던 앞선 두 경기에서는 매번 뒤집기 안타나 폭투로 점수를 허용했다. 선행투수가 남겨놓은 주자의 득점이어서 박찬호의 자책점으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실책 드문 퍼칼의 다발 실책 = 박찬호의 뒤를 이은 매덕스가 형편없이 죽을 쑨 것도 아니었다. 구위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럭저럭 컨트롤로 4회초를 무실점 피칭으로 넘긴 뒤 5회초, 매덕스는 첫 타자 워스에게 좌전안타를 맞았다. 그러나 후속타자 어틀 리가 1루쪽 땅볼을 치고 1루수 로우니는 선행주자 워스를 2루에서 아웃시켰다. 실은 로우니가 공을 잡은 뒤 급한 마음에 글러브에서 서둘러 꺼내려다 멈칫하는 바람에 병살플레이가 안됐다. 기록되지 않은 에러였다. 그리고는 하워드의 좌중간 안타가 터졌다. 1사1,2루.
매덕스는 별 흔들림없이 후속타자 버렐과 승부했다. 버렐의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공의 바운스가 약간 괴상했다. 더욱 괴상한 것은 유격수 라파엘 퍼칼의 조급함이었다. 하나 잡기도 전에 둘 잡기(병살)를 욕심냈는지 공이 글러브에 빨려들기도 전에 주워올리다 공이 빠졌다. 빠지기만 했으면 다행이었다. 발에 걸려 멀리 튀어버렸다. 순간 냉정을 잃은 퍼칼은 그 공을 주워들고? 황급히 던졌으나 공은 초점을 잃어버렸다. 악송구. 어틀리는 홈으로, 하워드는 2루에서 3루로, 타자주자 버렐은 2루까지 치달았다. 4대0. 좀체 실책을 모르는 칼같은 퍼칼의 숨겨둔 실책 보따리는 아직 덜 비워졌다. 빅토리노 고의사구와 펠리스 삼진으로 2사만루 상황에서, 루이스가 친 땅볼을 처리하면서 퍼칼은 또다시 악송구를 범했고 그 사이에 3루주자 하워드는 홈을 훔쳤다. 5대0.
매덕스가 내준 2안타를 탓하기에 앞서 로우니의 기록안된 실책 1개와 퍼칼의 기록된 실책 3개 때문에 다저스는 주지 않아도 될 점수까지 덤으로 내주고 결국 20년만의 월드시리즈행 행군도 멈춰지게 됐다.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한 선수가 한 이닝에 3에러를 범한 것은 1966년 윌리 데이비스(당시 다저스, 월드시리즈 2차전) 이후 처음이다. 다저스는 6회말 터진 매니 라미레스의 솔로홈런으로 영패를 면했다.
▶NLCS MVP 콜 해멀스 = 필리스의 좌완선발 콜 해멀스는 5차전에서도 기막히게 던졌다. 7이닝동안 5안타 3볼넷 5삼진으로 1점만 내줬다. 라미레스에게 홈런을 맞은 유일실점은 실투라기보다는 K존을 한참 벗어난 듯한 공을 받아친 라미레스의 가공할 파워에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이로써 해멀스는 NLCS에서만 방어율 1.23의 놀라운 피칭으로 2승을 거두며 NLCS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차지했다. 해멀스는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도 1승을 거둔 바 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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