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은 부모의 평생직업
부부간 화목은 가정의 에너지
토요일에는 새벽기도를 마치면 교회에서 아침이 제공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마치면 모두 삼삼오오 식탁으로 모여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부부의 금실이 좋다고 소문난 한 장로님이 옆으로 앉는다.
안색이 아주 안 좋으시다. “무슨 일이냐”고 옆 사람이 물으니 매번 잠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 큰 유혹이라고 한다.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애들도 다 독립해 나가고 집에 방이 많아서 잠이 잘 안 오고 할 때는 엎치락뒤치락 옆 사람도 잠 못 자게 만드는 것보다 옆방에 가서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든 부부라고 해도 부부가 별방을 하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같은 침대에서 자는데, 전날 밤은 도무지 불편해서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장로님 부부는 사이가 좋으니까 그런 노력이라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또 다른 집사님 부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벌써 몇 주 전에 싸운 싸움의 앙금이 아직도 안 풀렸단다.
그래도 애들이 집에서 학교에 다녔을 때나 집에서 출퇴근했을 때는 여러 가지 애들에게 신경 쓸 일이 있어서 금방 며칠만 가면 풀고 풀리고 했지만, 이제는 애들도 없겠다 한번 싸움을 하면 서로 각방에서 자면서 각각 상대방의 일에 신경을 끄고 지내기가 일쑤이기 때문에 며칠이 아니라 몇 주도 아무 대화 없이 쉽게 지나간다고 한다.
아이들이 집에 있었을 때와 다 나가고 난 후는 분명히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간 큰 남자’라는 시리즈 같은 것이 생겨서 부인이 곰국을 많이 끓여 놓거나 목욕을 하거나 아니면 이사 가자고만 해도 간이 써늘해진다는 농담이 생기나 보다.
우리 집도 요번 여름에는 애들이 스케줄이 각기 달라서 모두 같이 있었을 때는 극히 짧았지만, 애들이 하나라도 있었을 때는 끼니마다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가끔 무엇인가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어서 오붓한 식사시간을 갖게 하느라고 신경을 썼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애들이 다 떠나고 없으니까 아무거나 전날 남긴 것을 꺼내 먹거나, 간단히 집근처 음식점에서 사먹고 마는 경우가 많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애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였는데 내 젓가락이 막 나가려고 했던 반찬을 집사람이 그것을 못 보았던지 날름 집어다가 “얘, 이거 맛있어, 먹어 봐라”하고 애들한테 주는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인데 이제는 문득 섭섭한 마음까지 드는 것은 또 웬일인가!
그리고 요즘 자주 느끼는 것은 애들이 각자 자기 사는 곳으로 돌아가고 나니까 왜 이렇게 집이 커 보이고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나 하는 것이다.
애들 중심으로 살다가 애들이 없어지고 나니까 무슨 개점 휴업하는 여관방 같기만 하다. 애들은 이제 다 떠나가고 손자들이 생기면 모를까 지금은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씩 명절에나 들려주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판이 되었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시정할 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간 직장에서 알았고, 또 교회에서 일년을 사귀다가 결혼하게 되었을 때에는 결혼 후 허니문베이비로 시작해서 매년 애들이 생겨서 그 애들 데리고 이러고저러고 바쁘게 20여년을 지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항상 우리 부부가 주체라는 의식이 있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애들이 다 떠나갔고 이제 우리 부부만 남아 있는데, 이 분위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마침 설교준비를 하다가 찾아볼 자료가 있어서 차고에 나가서 이 상자 저 상자 뒤져보다가 학교 때 앨범과 옛날 결혼사진첩이 눈에 들어 왔다. 예전에는 그래도 손님이 오면 자주 내놓고 잘 보여주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언제부터인가 차고 선반 위 상자 속으로 자리를 옮기고 아주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부모이기 전에 부부, 아니 한때는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그날 오후에 늦게 집사람이 들어왔다. 그 날은 특히 피곤해 했다. 그 날도 냉장고에 먹을거리가 많이 있었지만, 무엇인가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어디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다 늙은 사람이 그래도 좀 젊은 부인한테 오랜만에 데이트를 신청한 것이다. 이 나이에도 그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 말인지 금방 눈이 똥그래지면서 “정말!”하며 좋아했다.
차로 향하면서 집사람은 “한식? 중국식? 일식?” 하며 큰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음식점들을 늘어놓았지만, 우리가 향한 곳은 언젠가 한번은 집사람이랑 꼭 가고 싶었던 바닷가 옆 생선집이였다.
선창가 바다 옆에서 맛있는 것을 잔뜩 시켜놓고 옛날 데이트 때나 먹었던 싱싱한 생굴도 오랜만에 시식했다. 마침 마리아치밴드가 옆에서 반주를 해서 흥겹게 춤도 추고 싶었던 것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제법 분위기를 잡으며 저녁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서야 집으로 향했다. 옛날 데이트할 때가 자꾸 생각이 난다면서 나이를 잊고 있는 집사람을 볼에 의식하면서.
저녁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딸 결혼 감사예배를 드리니까 오라고. 결혼식은 동부에서 자기네들끼리 했는데 섭섭해서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아들은 서른인데 아직 결혼은 꿈도 안 꾸고 있다고 푸념이다. 요즘 초혼이 점점 늦어지는 것이 추세인 것 같은데 부모들이 사는 것을 보면 도저히 왜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못 느껴서라는 대답도 있다고 한다.
생각난다. 대학이 끝이 아니고 좋은 직장 얻는 게 절대로 끝이 아니란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항상 공부하는 부모 밑에 나온다고 하듯이 부모가 부모이기 이전에 좋은 부부가 되어야 제때 척척 좋은 배우자를 찾아서 결혼하는 자녀가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johnsgwhang@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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