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로우그 수퍼 파워’(rogue super power)다. 국제평화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이란이, 북한이 아니다. 미국이다.” 4년 전이었나. 반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기세를 떨치던 때가. 들려오느니 반미구호에, 미국의 패권주의를 성토하는 목소리였다.
미국이 국제무대의 뒷면으로 사라진다면…. 마치 미국이 망하기라도 고대하고 있는 것 같던 당시 분위기에서 던져진 질문이었다.
가설을 토대로 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현실에서의 답이 뒤늦게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거대한 골리앗이 비틀거리고 있다. 스텝이 뒤틀렸다. 곧 주저앉을 것 같다. 금융위기가 악화되면서 미국은 쓰러질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약한 미국’에 대한 우려가 아시아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지적이다.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케이스로 호주를 지적했다. 같은 앵글로-색슨계 나라다. 그렇지만 반미여론이 여간 거센 게 아니었다. 금융위기가 가중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국에 대한 불신감이 오히려 커지면서 미국과의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강력한 미국’에 대한 일종의 노스탤지어 같은 것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약한 미국’이 의미하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여기서 4년 전에 던져진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약한 미국은 미국 독주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중국, 유럽 등이 새로운 파워로 부상하는 다극화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일부의 관측으로, 아주 틀린 전망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먼저 ‘파워의 공백기’가 올 수도 있다.” 다른 쪽에서 제시되는 관측이다. 미국이 무대 전면에서 물러날 때 그 공백을 유럽과 중국이 메울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는 데서 내려진 전망이다.
유럽은 급격히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다. 유럽의 중간연령은 머지않아 40세가 넘고, 유럽인 셋 중 하나는 65세 이상이 된다. 바로 이점이 유럽이 패권적 위치를 차지할 수 없는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중국의 GDP는 30~40년 안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다. ‘팬더 허거’로 불리는 친중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 역시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의 금융시스템은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 공산당 우선주의를 계속 고집하고 있는 가운데 부정부패는 극에 이르렀다. 경제,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투명성이 결여돼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멜라민 파동’이야 말로 이런 중국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국정부는 분유 오염사태를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은폐했다. 북경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다. 분유를 수출한 나라에 정보도 알리지 않았다. 결국 진상이 드러났고 그 파동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결정적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런 중국이 과연 글로벌한 파워로 부상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미국 이후의 세계는 다극화 시대 이전에 자칫 ‘파워 공백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유력시되고 있는 것이다.
패권국가가 없다. 파워 공백기의 특징이다.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나라가 없다는 이야기다. 질서는 때문에 일부 지역에 국한돼 유지된다. 지구촌 곳곳이 지역 패자를 중심으로 한 세력권들로 나누어지는 일종의 군웅할거 비슷한 시대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화에는 제동이 걸린다. 그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세 암흑시대를 방불케 하는 세상이다. 파워는 공백상태를 나두지 않는다. 한 패권국가가 사라지면 그 공백을 새로운 파워가 메운다. 역사의 흐름이다. 때문에 파워의 공백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어지는 전망이다.
문제는 새로 질서가 확립되기까지 그 과정이 과연 순조로울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순조롭지 않았다. 평화가 유지되는 가운데 새 질서가 찾아진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파워와 파워의 이음새라고 할까, 단층이라고 할까, 그런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들이 파워의 전환기에 맞았던 운명은 대체로 가혹했다는 점이다.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한반도가 바로 그 이음새에 해당되는 곳에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깊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미국은 머지않아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닷컴 버블을 극복한 후 미국경제가 더 든든해진 것 같이. 변함없는 생각으로, 세계는 약한 미국을 원치 않고 강한 미국을 원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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