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에 대처하는 연방정부의 금융위기 해결용 적자 재정지원금 7,000억달러 안건이 성난 민심에 겁먹은 하원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양당 지도자들은 이 안건의 통과를 위해 이런저런 사탕발림으로 이 안건의 지원액수를 1,000억달러 넘게 올렸다.
이왕 예산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하면 금융시장에 큰 일이 난다는 폴슨 재무장관의 위협에서 시작한 거니까, 재정적으로 무책임한 행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은 지원금 액수를 8,000억달러 넘게 올리고, 우여곡절을 거쳐 이 안건은 통과되었다.
그런데 왜 증권시장은 예상(?)대로 올라가지 않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다른 실물경제 소식들이 워낙 좋지 않고, 또 이 법안의 실현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실행과정의 여러 문제들이 있고, 또 사실 이 8,000억이란 천문학적 적자 예산으로 퍼붓는 금융구제로도 감당이 안 되는 55조가 넘는 CDS란 개인 금융주체들 사이의 지불보증 계약의 시궁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숫자들이 높아 감이 오지 않으시겠지만, 이 천문학적 예산 적자로 공급하는 8,000억달러의 월스트릿 구제법안의 80배 정도 되는 큰 시궁창이 있다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월스트릿의 100만달러 단위 거액 보너스 잔치 때 1달러도 구경 못한 일반 시민들에게는 울화가 치밀 이 문제의 근본에는 무책임이란 단어 하나가 있다. 모기지 파동의 한 가운데는 싼 이자, 쉬운 자금공급, CDS로 사탕발림이 된 위험한 투자 리스크를 무책임하게 서로 돌려가며 노름한 월스트릿의 죄가 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힘없는 개인들은 위기에 처한다 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자빠지면 너희들 모두가 다친다는 공갈협박이 통할 정도로 사이즈가 커지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1980년대 초의 크라이슬러 구제가 대규모 ‘무책임’ 경제의 시작이었다.
그때 크라이슬러가 망하게 두었더라면 지금 미국 자동차산업이 저 지경으로 가망 없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영진들은 쉽게 살려고 노조에 장래 실현 가능성 없는 것도 양보하고 보너스 많이 받고, 노조에서는 무조건 억지를 쓰면 통한다는 정신으로 밀어붙이고 오다보니 이젠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미국 자동차산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억지가 습관이 된 것이다.
이번 개정된 구제법안에는 1년 한도로 봐주는 연방 예금보장금액 증가 규정이 있다. 지금 10만달러까지 보장하는 예금보호가 25만달러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동안 인플레도 있고 하니까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발상이야 말로 그야말로 지금의 금융위기를 가져 온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경험이 미국에겐 교훈이 되어야 한다. 1996년부터 일본은 25만달러가 아니라 은행예금은 전액 지불보장을 해 줘왔다. 그래서 일본 금융산업의 필요한 구조조정은 느려졌고, 경제의 불황은 장기화 되었다. 일본의 학계와 정부 모두가 이제야 그 실수를 인정하게 되었지만, 은행예금의 거액 정부지불 보증제도는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
약하고 무능한 자동차회사가 망해야 살아남는 회사들은 정신 차려서 장기 전략을 세우게 되고 강해지듯이, 약한 은행들은 망해야 더 강한 나머지 은행들이 더 건실해지게 된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철학이요, 존재 이유다. 일반 예금주들은 10만달러 이상 되는 예금을 맡길 은행을 물색하게 되고, 약하고 무능하고 믿을 수 없는 은행들을 피하게 된다.
사립인 은행들을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반 대중들의 예금을 받는 곳이 지니는 공공성 때문이다. 경영진은 유능하고 여신과 수신 모든 분야에 정통하고 신용이 튼튼해야 살아남는 금융 환경이 필요하다. 아무 예금이나 정부에서 지불보증을 하게 되면 또다시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 예금주들도 해이해져서, 높은 수준의 경영진이 있고 이사회가 훌륭한 은행을 찾지 않아도 안심을 하게 된다. 그것이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다.
세상은 건실하고 조심스런 경제 주체들만 살아남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그런 환경에서는 위기가 생길 이유가 없고, 죄 없는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구제할 필요가 있는 무능한 회사도 은행도 없게 된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