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신건강 위한 위크엔드 특별기획 ‘태극권의 세계’ (4)
태극권은 기혈이 ‘흐르는 물처럼’ 소통하게 해주는 운동이다. 사진은 지난 5일(일) 오전 샌프란시스코 금문공원 호숫가에서 태극권 고수 빌 친 노사(오른쪽 끝)의 지도에 따라 다인종 시민들이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는 장면이다.
물은 모든 것에 순응하면서 그 모든 것을 이긴다
태극권은 새 몸의 창조 아닌 본디 몸의 회복이다
이소룡(Bruce Lee). ‘정무문’ ‘용쟁호투’ 등 영화를 통해 동양무예의 신비롭고 가공할 위력을 세계인에 각인시킨 영화배우 겸 제작자. 서른 셋 젊은 나이(1973년)에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도 하듯 ‘사망유희’란 이름의 영화를 촬영하다 운명을 달리해 이소룡 괴담을 신화의 경지에까지 올려놓은 액션스타.
사후 35년이 흘렀지만 브루스 리 스토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지간한 동네 조그마한 도서관에 가도 이소룡에 관한 책이나 만화, DVD 등이 진열돼 있고,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가면 두 눈을 부릅 뜨고 누군가 노려보는 이소룡, 쌍절곤을 휘두르는 이소룡, 웃통을 벗어제친 채 옆차기를 하는 이소룡 등등 온갖 포즈의 이소룡을 사진으로 인형으로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많다.
이소룡은 단지 무술을 잘한 배우 혹은 연기를 잘한 무인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소룡 사후 강산이 세 번 이상 바뀌는 세월동안 이소룡의 아류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와중에 이소룡이 현재형 전설로 ‘장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연기무술이 아니라 실전무술의 달인이었다. 174cm의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집에도 그는 6척이 넘는 장신에 람보형 근육질 사나이들이 우글대는 무술세계에서 당당히 챔피언으로 군림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이소룡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찬탄을 받은 자신의 무도철학을 이 말로 집약했다고 한다. 상선약수는 도교의 교과서라 할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이다. 지극한 선(善)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이다. 이소룡의 무술철학에 곧대로 적용하면, 지극한 무술(무도)은 흐르는 물과 같다. 이번 태극권 시리즈 자료준비를 하면서 동네(밀밸리) 도서관에서 골라잡은 어린이용 이소룡 이야기책(거창하게 전기랄 것도 없다. 큼지막한 글씨에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전면을 채운 삽화에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심심풀이 책이다) 제목에서도 ‘물’이 흐른다. 물이 되거라, 내 친구야(Be Water, My Friend! 강철이나 금강석 같은 이소룡은 어떤 연유로 무술(도)의 최고경지를 강철이나 금강석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비유하게 됐을까.
정색하고 쓴 이론서들은 너무나 신비로워 도리어 믿음이 안가는 측면이 있다. 차라리 어린이용 심심풀이로 쓴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를 곁들이는 게 나을 것 같다. 관련부분 줄거리는 이렇다. 샌프란시스코 태생인 이소룡은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가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쿵푸 등 무술에 소질을 보였다. 그 나이 이소룡에게 무술은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실은 그 재미로 무술을 했다.
어느날 그는 몇살 위 덩치 큰 청년들을 때려눕히고 의기양양하게 도장에 나갔다. 백발의 스승은 노발대발했다. 무술을 잘못 배웠다며 그를 호되게 야단치고는 일정기간 도장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소룡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결석해도 도장은 개근했던 이소룡은 학교숙제는 팽개쳐도 그것만은 알아야 했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 된 이소룡은 보트를 타고 연해로 나갔다. 출렁이는 파도에 함께 출렁이며 이소룡은 절규하듯 화풀이하듯 호소하듯 주먹으로 수도로 물을 작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가르면 금방 갈라지고 부수면 금세 부서지되 그 물은 도로 그 물이 되는 게 아닌가. 한없이 갈라지지만 끝내 가를 수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만 영영 부술 수 없는 물, 거기서 이소룡은 물의 위대함을 체득했다고 한다.
태극권의 철학이나 원리는 갖가지로 설명된다. 그러나 알기 쉬운 한마디만 추리라면 ‘물’이다. 사족을 붙이면 ‘흐르는 물처럼’이다. 물은 물을 이기려는 모든 것과 다투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간다. 돌아갈 길도 막히면 제자리서 쏘를 돈다. 물러나면 따라간다. 밀려오면 물러선다. 높낲이가 있으면 낮은 데로 흐른다. 미국에서 태극권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는 테리 양 사범의 타이치 DVD 첫머리에도 바위에 끝없이 부딪혔다 끝없이 부서지면서 강성하고 뭉툭했을 바위를 끝내 삐쭉빼쭉 둥글납작 갖가지 모양으로 ‘물의 뜻대로’ 빚어내는 바닷물을 배경으로 도덕경에 나오는 물에 관한 또다른 구절을 인용한다. 모든 것에 순응하고 양보하지만 결국 바위를 뚫고 쇠를 녹슬게 하는 물의 위대함 속에서 태극권의 원리를 읽게 하려는 것이다.
무술로서의 태극권만이 아니다. 건강운동으로서의 태극권도 마찬가지다. 몸을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기혈의 흐름이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처음도 끝도 ‘물처럼’ 몸을 바꿔주는 것이 곧 이번 시리즈 2편(9월26일자)에서 설명한 환골탈태(換骨奪胎)다. 그런데 환골탈태는 전에 없던 새로운 몸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잘못된 습관 등으로 쌓인 태를 씻어내고 본래 타고난 ‘자연의 몸’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이를 위한 방법론이 환골(換骨)이다. 즉, 관절을 하나하나 풀어줌으로써 관절이 이어주는 뼈대들에 기혈이 ‘흐르는 물처럼’ 원활하게 나다니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뼈대들에 붙은 장부(臟腑)들의 에너지순환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콱 막힌 도로정체를 풀어주어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그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태극권을 소개하는 이론서나 체험서 등을 보면, 역경(주역)의 음양오행설, 노자의 도덕경, 각종 권술, 양성법, 호흡법, 경락학설, 고대유물철학 등등 오늘날의 태극권이 있게 한 온갖 바탕철학과 발전사가 이어지고 무협지 같은 용어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탄천지기 접지지력 수인이유(呑天之氣 接地之力 壽人以柔:하늘의 기를 삼키고 땅의 힘을 접하며 사람의 부드러움으로 장수함) 극유극강(極柔極剛, 극도로 부드러운 가운데 극도로 강함을 깃들게 함) 인진낙공(引進落空, 상대의 허점을 파악해 균형과 중심을 흐트러뜨림으로써 허공에 떨어지는 듯하게 함)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넉 량의 힘으로 천 근의 힘을 튕겨냄) 등등은 오히려 쉬운 편에 속하고 제한된 컴퓨터 한자로는 도저히 표기할 수 없는 용어들이 수두룩하다. 용어마다 심오한 뜻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이해하자니 도리어 머리가 복잡해질지 모를 독자들에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쉬운 설명을 들라면 이 역시 ‘흐르는 물처럼’이다.
당신의 몸은 과연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운가. 여기 뻐근하고 저기 쑤시지만 나이탓이라고 체념하고, 마음은 굴뚝 같은데 시간이 없다고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거꾸로, 단단한 쇠처럼 만들겠다고 기(氣)를 쓰고 혈(血)을 말리고 있지 않은가. 기혈(氣血)을 ‘흐르는 물처럼’ 만드는 구체적인 몸풀기와 태극권 기본동작(양가 24식)에 대한 설명은 다음회부터 이어진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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