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율이 낮아 돈을 빌려도 별로 부담이 안된다. 은행들은 대출을 열심히 늘려 웬만하면 대출이 된다. 대출을 받은 돈으로 투자를 해도 이자율이 워낙 낮아 부담이 안 되고 그러다보니 투자의 열풍이 불고 자산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다. 투자의 기본원칙인 수익률은 중요치 않고 일단 사기만 하면 값이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한다.
인플레를 걱정한 금융당국이 이자율을 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자율 인상에 아랑곳하지 않더니 결국 부담이 된다. 빚 갚기 바빠져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지출을 줄인다. 매상이 줄어 수익이 나빠진 기업은 직원을 줄인다. 실업이 늘어난다.
그동안 믿었던 투자자산 가치가 떨어진다. 대출의 연체가 늘어나면서 금융권의 불안이 생긴다. 큰 은행이 무너진다. 연쇄적으로 은행들에 대한 불안이 생기면서 예금인출 사태가 이어진다. 수많은 은행이 문을 닫는다. 대출은 더 줄어들어 대출자의 부도를 촉발한다.
지금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의 전개과정을 다시 돌이켜본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과 너무도 비슷하다. 투기열풍이 대공황 때는 주식시장에서 절정을 이룬 반면 이번은 주택시장에서 나타난 차이만 다르다.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이 지금과 같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치 못한다. 너무 오래 전의 얘기다 보니 역사의 사건으로 겨우 기억할 뿐이고 그 끔찍한 사건이 설마 지금과 같을까 하는 현실 부정의 방어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의 상황을 대공황에 대입하면 그렇게 편안한 안위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때보다 얽힌 부분이 크고 다양해 어쩌면 더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는 파생상품도 없었고 국제금융시장도 매우 단순했다.
그래도 이번 사태가 대공황만큼 심각하게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받는 논리는 대공황을 겪은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대공황 현상을 연구해 문제해결의 방법이 개발돼 있다는 주장이다.
쉽게 비유를 하면 같은 병을 앓고 있는데 대공황 때는 그런 병이 처음이어서 의사가 처방을 제대로 못했고 약도 없어 치료에 실패한데 반해 지금은 의사가 제대로 알고 있어 치료를 잘 할 것이라는 말이다.
대공황을 연구한 경제학자들 중 전통 경제학의 대표적 인물로 작고한 밀튼 프리드만 교수를 꼽는다. 프리드만 교수는 대공황의 분석에서 ‘1929년의 주식시장 붕괴가 대공황을 가져온 것이 아니고 거품붕괴 이후 금융당국이 유동성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즉 거품의 붕괴가 경제를 어렵게는 했겠지만 금융당국이 적시에 돈의 공급을 늘려 은행권이 무난히 돌아가게 했더라면 대공황 같은 재앙까지 가져올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 당국은 바로 이 이론에 근거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로 파생되는 금융위기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작년 8월부터 은행을 보호하고 돈도 풀고 이자율도 낮추었다. 이러한 개별적 시도가 한계에 이르자 사상 초유의 구제금융법안을 시도하면서 금융권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국민과 의회는 불만이 많다. 문제를 일으킨 그러면서 큰돈을 벌었던 금융권을 왜 국민의 세금으로 도와주느냐는 불만이다. 정서적으로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또 꼭 이 법안이 경제를 살린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경제를 가장 많이 연구한 전문가들의 의견이기에 이 시도는 해야 한다. 시도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바로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가능성마저 없어진다는 것이다.
경제는 국가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삶이다. 월가가 문제를 일으킨 것도 결국 보면 내가 일으킨 것이다. 서브프라임이 날뛸 때 우리는 집값이 오르고 사업이 잘 된다고 같이 행복해했다. 이제 와서 그들의 죄로만 몰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 힘을 합치고 지도자를 믿고 도와줘야 할 때이다. 남이 남이 아니고 바로 나라는 통합의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대공황 때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새겨볼 때이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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