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영국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이 실시됐다. 별자리가 회사의 운세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점성술사와 투자 전문가, 그리고 주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네 살배기 어린 소녀가 참여해 일주일을 기간으로 누가 더 효과적인 투자를 하는지 경연을 벌였다. 투자금은 5,000파운드로 영국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일주일 후 나온 결과는 점성술사 10.1% 손실, 투자전문가 7.1% 손실, 어린 소녀 4.6% 손실이었다.
일주일은 결론을 내리기에 너무 짧다고 생각한 실험단은 그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해 다시 평가했다. 이 기간 세계 증시는 16%나 떨어지는 등 고전했다. 1년 후 나타난 결과는 더욱 뚜렷한 결론을 보여 주고 있었다. 투자전문가는 46.2%의 손실을 기록, 투자금을 반 토막 냈으며 점성술사는 6.2% 손실로 그런대로 양호했다. 반면 4세 소녀는 하락장세 속에서도 5.8%의 이익을 냈다.
이런 사례는 예외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스타일을 구긴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나서 만들었던 LTCM이라는 헤지펀드의 실패이다. 유가증권 파생상품의 가치 추정 방식을 개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숄츠와 로버트 머튼이 주축이 돼 1994년 설립한 이 펀드는 동일한 채권이 지역에 따라 수익률이나 가격이 다를 경우 이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 기법인 아비트리지를 이용해 초기에는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성공은 거기까지였다. 아비트리지 기회가 축소되면서 부채 비율은 높아만 갔으며 결정적으로 1998년 러시아 화폐 평가절하 등 예측 못한 사태들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단 한 달 사이에 펀드자산의 90%가 사라졌다.
현재의 월가 금융 쓰나미의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채권에 관한 한 세계 최고수준의 전문가라 불릴만한 인사들이 모여 만든 펀드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바람에 투자자들의 알토란같은 돈을 연기처럼 날려 버린 것이다.
투자세계에서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분석이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전문가들이 고른 주식과 다트 던지기로 고른 주식의 수익률을 비교하면 다트로 고른 주식의 수익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1년 전 오늘 다우존스가 1만선 이하로 폭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전문가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기껏해야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내다 본 전문가들이 조금 있었을 뿐이고 엉뚱하게(결과적으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던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제전망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인사가 800원대로 예상했던 달러대 원화환율이 정반대로 폭등해 지금 1,300원대에 육박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돈을 움직였던 사람들은 땅을 치겠지만 전문가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다.
일어난 일을 따지고 분석하는 데는 전문가들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날지 모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다르다. 전문가는 글자 그대로 한 분야에 좀 더 많은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혹은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을 다른 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휘로 그럴 듯하게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들의 말에는 묘한 아우라가 형성된다. 특히 자기 주관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전문가들의 말에 쉽게 이끌린다. 그래서 맹신하게 된다.
이런 경향을 언론도 부추긴다. 많은 보도들에서 ‘전문가들에 따르면’ 혹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항상 같지도 않을 뿐더러 이들의 견해가 전체 그림을 보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인간세계의 현상은 단 한 가지 이유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여러 가지 원인과 다양한 인과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거기다 인간의 마음까지 작용한다. 한 우물을 파고들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전문가들이 현실세계에서 뛰어난 투자가가 되기 힘든 이유이다.
전문지식은 존중 받아야 하지만 맹신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수렁에 빠진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자칫 부화뇌동이 되기 쉽다.
정신 사납게 변동하는 주식가격과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춤추기보다는 워런 버핏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장기투자’와 ‘복리의 힘’ 같은 불변의 원리를 신뢰하는 일이 더 필요한 때이다. 경제에 펀더멘탈이 중요하듯 개인 경제생활에 있어서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펀더멘탈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요동치는 금융시장은 확실히 깨우쳐 주고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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