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는 예나 지금이나 은퇴자들의 낙원이다. 새하얀 백사장과 새파란 바다, 연중 따뜻한 날씨는 북동부의 매서운 한파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늘 유혹의 손길을 뻗쳐왔다. 월가의 호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이곳에 별장을 사는 사람도 늘고 그와 함께 땅값도 올랐다.
처음에는 경치 좋고 생활이 편리한 곳의 부동산이 뜨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위치가 해변인지 늪지대인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손을 뺄 때가 됐다”고 판단한 순간 붐은 버스트로 바뀌고 막차를 탄 사람은 알거지가 돼 나왔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계속된 플로리다 부동산 버블의 모습이다. 땅 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이 때 구입자의 90%는 투기꾼이었다. 1925년 마이애미 헤럴드는 미 역사상 최대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투기 바람이 꺼지기 시작한 1926년 이곳을 강타한 허리케인은 확실하게 거품을 터뜨려 줬다.
플로리다 부동산의 붐과 버스트는 월가의 축소판이었다. 자연은 허리케인을 통해 버블의 위험성에 관한 뚜렷한 경고를 보냈지만 욕심에 취한 인간들은 이를 듣지 못했다. 1920년대부터 말까지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10배가 올랐다. 이처럼 주가가 한없이 오르자 너도나도 빚을 내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 같은 전문가들도 “미 주가는 영원한 고지에 올라섰다”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1990년대 주식 버블의 원동력이 인터넷 등 하이텍이었다면 20년대 주식 버블의 원인은 자동차였다.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가 포드 모델 T의 등장과 함께 중산층의 필수품이 되면서 철강에서 석유, 도로 등 자동차 관련 산업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월가에 투기 세력이 가세하면서 당시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플로리다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슬슬 발을 뺄 때가 됐다”고 판단한 순간 주식 버블은 터졌다. 1929년 9월 3일 정점에 도달했던 주가는 하락세로 접어들더니 10월에는 가속적으로 떨어졌다. 10월 23일과 24일 폭락했던 주가는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28일에는 13%, 29일에는 15% 폭락했다. 이와 함께 20년대의 호황은 끝나고 대공황이 시작됐다.
대공황은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됐지만 주가 폭락이 대공황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가 돈을 찾으면서 은행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신용 경색으로 기업들의 돈줄이 막히면서 연쇄 부도와 함께 대량 실업 사태가 터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당시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우선 미국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비즈니스 지도자들과 회의를 하며 미국 경제가 근본적으로 튼튼함을 역설했다. 기업 총수들로부터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지 말 것을 부탁해 약속을 받아냈으며 미국 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높이는 스무트 홀리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경기가 나쁘고 물가가 내려가는데 임금을 줄이지 못하게 된 기업은 감원하거나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상품을 팔 수 없게 된 외국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무역 장벽을 치는 바람에 미국 기업들의 수출 길은 막히게 됐다. 사정은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취임해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실업자들이 군대로 가고 미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으면서야 경기는 살아났다.
미국이 지금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 금융안이 통과됐는데도 전세계 주가는 폭락하고 신용 경색은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 위기가 진행된 과정은 2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다행인 것은 현재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인 벤 버냉키가 대공황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때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란 점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골드만삭스와 GE 등 우량 기업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을 대신해 지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이 2조 달러의 자금을 갖고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과연 미국은 대공황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인가. 아니기를 빌 뿐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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