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금융위기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새삼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벌써 몇 년째 인가.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거기다가 이란, 북한 등의 핵 도전에 고전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사태에도 속수무책이다. 경제사정은 악화만 되고 있고.
미국이 처한 이 같은 현실과 관련해 그동안 줄곧 던져진 화두가 ‘미국시대의 종언’이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다시 던져지고 있는 이 질문은 상당히 긴박성을 띠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대공황이 오는 건 아닌지, 끝 모를 불안감이 짓누르고 있다. 그 불안감이 한층 쇠약해진, ‘말뿐인 수퍼 파워’ 미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투영하고 있어 보여서다.
‘오만의 대가다’-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을 바라보는 상당수의 시각이다. 신보수주의자(neocon)와 신자유주의자(neoliberal)들이 모는 쌍두마차를 타고 한껏 우쭐대던 미국이다.
정치고, 경제고 간에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에 저해될 때에는 파멸을 감수해야 한다. 그동안 미국이 보여 온 패권적 일방주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선제 공격론을 주창했다. 또 세계화를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그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참담한 좌절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금융위기다. 무엇을 말하나. 오만의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게 됐다는 거다.
그러면서 새삼 제시되는 게 ‘미국 시대는 끝’이라는 진단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멸망기의 로마제국과 비교된다. 미국의 쇠망은 기정사실로, 그 하강곡선이 상당히 가팔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물론 전 같지 않을 것이다. 경제력은 항상 정치력과 이어진다. ‘금융 수퍼 파워’로서 미국의 위상은 크게 손상됐다. 당연히 미국의 정치적 입지도 그만큼 좁아지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또 예상되는 것은 ‘BRIC’으로 통칭되는 국가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상대적 부상이다. 미국의 성장세는 둔화된다. 반면 이들 국가들은 지속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미국 세기의 끝을 의미하는가. ‘천만에’-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번 금융위기뿐이 아니다. 미국은 그동안 숱한 금융위기를 겪어 왔다. 대공황에서,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80년대 S&L 위기,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닷컴버블’에서 9.11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위기들을 미국은 번번이 극복해 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다. ‘닷컴버블’이 그 한 예다. 그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는 망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던 것.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수퍼 파워’급이다. 이 역시 ‘미국 세기의 끝’은 아직 멀었다는 근거다. 미국은 여전히 산업선진국 중 경제성장이 가장 높다. 경제규모에서도 압도적 1위다.
소프트 파워 면에서도 그렇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해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산학 협동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창의성 개발에서도 그렇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때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로 머물 뿐이다. 그 아이디어가 미국에서는 곧잘 혁명적 기술개발로, 또는 한 시대를 풍미할 ‘내러티브’로 발전한다.
선진 산업국들이 보이고 있는 공통의 문제가 낮은 출산율에, 인구감소 현상이다. 미국의 출산율은 2.1명이다. 거기다가 끊임없는 이민대열은 건강하고 새로운 피를 계속 유입시키고 있다. 이 같은 풍부한 인적 자산은 미국 세기 종말은 허구라는 걸 뒷받침하고 있다.
또 하나 기대되는 것은 위기를 맞았을 때마다 미국이 보여 온 유연성과 탄력적인 대응력이다. 이 점이 일본이나, 유럽과 극명히 대조되는 미국적 강점이다.
이번 경우도 그렇다. 위기가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부시 행정부는 7,000억달러 구제금융 방안을 제시했고, 대통령에서 의회 지도부, 그리고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가 하나가 됐다. 초당적 대처에 나선 것이다. 이 점이 우물쭈물하다가 ‘잃어버린 10년’의 결과를 가져온 일본의 90년대 부동산-증시 붕괴 시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미국 경제는 한동안 저속 성장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공황은 없다.
그리고 앞으로 구제금융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지켜보아야겠지만 빠른 회복세도 가능하다고 본다.”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 디렉터인 로렌스 린제이의 지적이다. 이번 사태가 수습되면 미국은 더 강력한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세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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