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으로서의 프로스포츠가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 것은 프리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이다. 뛰어난 선수를 잡기 위한 시장의 무한경쟁이 벌어지면서 이들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다른 선수들보다 기량과 성적이 조금 더 낫다 싶으면 터무니없는 몸값이 오가는 실정이다.
1980년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100만달러의 연봉은 최고 수준을 뜻했다. 그런데 시장의 구조가 왜곡되면서 지금은 그저 그런 선수들이 연봉 수백만달러이고 최고다 싶으면 10년 계약기간에 몇 억달러의 돈이 오간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이는 열정은 예전만 못한데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프리에이전트를 앞두고 바짝 성적을 올려 거액 계약을 성사시킨 후 신통치 않은 성적으로 구단주와 팬들의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먹튀’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런 ‘먹튀’들은 부자 구단주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이니 뭐라 할 말 없지만 투자자들과 납세자들의 주머니를 축내는 ‘먹튀’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는 월가 금융 쓰나미의 중심에는 남의 돈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며 흥청망청 해 온 CEO들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CEO들의 탐욕이 사태 전체를 불러온 것은 아닐지라도 문제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해 온 보수주의 인사들조차 탐욕적 이기심과 당국의 어리석은 태만에서 이번 위기가 초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미국 기업의 CEO들이 챙기는 돈은 프리에이전트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아 왔다. 1980년만 해도 미국 포천 500대 기업 총수들은 종업원들보나 42배정도 많은 연봉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무려 364배에 달한다. 능력 있는 CEO라 할지라도 평균적 능력의 소유자들보다 조금 더 뛰어날 뿐이다. 그런데도 받아 가는 연봉과 보너스는 몇 백배이다.
이념적으로 중립적인 저명한 경제학자 3명이 미국 CEO들의 연봉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들의 연봉이 경영 능력의 시장 가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렌트 착취’에 가깝다는 것이 학자들의 결론이었다. 렌트 착취는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지위를 이용해 렌트를 지독하게 받아 챙기는 악덕을 의미한다.
연봉과 보너스만이 아니다.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고, 어떤 CEO들을 보면 그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재직 중 사망하면 유가족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하도록 계약을 맺는 경영자는 흔하고 자기의 개인적 세금을 회사에 떠안기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책임 또한 받는 액수만큼 떠안는다면 그나마 눈감아줄 만한데 실상은 정반대다. 이번 금융 사태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듯 회사를 망하게 하고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수천만달러의 보너스를 챙겨 내려오는, ‘황금낙하산을 탄 인간들’이 이들이다.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의회 청문회에 나와서는 “받을 자격이 있어 받았다”고 큰소리다. 당당한 것인지 뻔뻔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런데 경제계, 특히 금융 분야에서 탐욕의 절정은 CEO에서 끝나지 않는다. 헤지펀드에 가면 입이 벌어질 정도이다. 투기성 강한 상위 25개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연간 가져가는 연봉과 보너스 총액은 100억달러를 훌쩍 넘는다. 한 사람이 챙기는 돈이 수만명의 연봉에 해당된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기형적인 시장 구조 속에서 이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탐욕이 빚어낸 경제참사를 목격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것은 경제가 초호황을 누리던 몇 년 전 진보논객 그렉 이스터브룩이 했던 지적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어지간한 삶을 살며 어지간한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가운데 회사 이익을 도적질 하는 기업인이 한 명도 없다면 우리 모두가 시대의 번영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조금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군상들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조금 더 불행해졌다. 금융위기 속에 뒤늦게나마 모두가 절감하고 있는 뼈아픈 지적이다.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의 잘못된 식습관, 즉 탐식과 편식이 지금의 건강 이상을 초래했다.
CEO들의 도덕적 해이를 뿌리 뽑기 위해 제재가 필요하다는데 양당 대통령 후보들과 정치권에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우리에게 가질수록 더욱 커지는 탐욕의 아이러니를 확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탐욕은 신뢰뿐 아니라 탐욕을 지닌 자 스스로를 궁지로 몰게 된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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