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재임 기간에는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여겨지다 세월이 가면 점점 평가가 높아지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살아 생전에 과소평가 되다가 나중에 진가를 인정받은 대표적인 대통령이 해리 트루먼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의해 막판에 러닝메이트로 지명됐다 루즈벨트가 취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자 우연히 대통령이 된 그는 주위의 냉대 속에 일을 시작했다. 그가 재임 기간 기록한 최하의 지지율은 현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와서야 깨졌다.
미주리 농부의 아들로 20세기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지 못한 그는 50이 되기 전까지 옷가게 주인을 하다 파산한 후 지방 법원 판사로 선출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유럽의 공산화를 막았으며 마샬 플랜을 통해서 유럽의 경제 부흥을 일으켰다. 베를린 공수를 통해 독일을 지킨 것, 유엔군을 보내 김일성의 남침을 막은 것도 모두 그의 업적이다.
정치적 연줄이나 화려한 경력이 없던 그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던 것은 타고난 정직함과 책임감, 부지런함 등 그의 성격 탓이 크다.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뜨거운 것이 싫으면 부엌에서 나와라” 등은 그가 남긴 명언이다.
그는 또 스캔들이 없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연방 상원의원으로 있을 때부터 대통령직을 그만 둘 때까지 돈이나 여자 문제로 말썽이 난 적이 없었다. 그가 하던 옷가게가 불황으로 파산했을 때도 10여년에 걸쳐 진 빚을 모두 갚았다. 그 점에서 역시 잡화상을 하다 망한 후 남은 빚을 모두 갚은 링컨과 닮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 문제로 신세를 망쳤지만 나는 그럴 염려가 없다. 내게는 오직 아내 베스가 있을 뿐”이란 말에서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오랫동안 바닥에 있던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데 앞장 선 사람은 데이빗 맥컬로우다. 그는 베스트셀러이자 고전이 된 ‘트루먼’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인품과 업적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 맥컬로우가 ‘존 애덤스’라는 책을 써 화제다.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은 이 책은 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 등 기라성 같은 인물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2대 대통령 애덤스의 삶을 생생히 적고 있다.
역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가 된 후 1770년 영국군이 식민지인을 살해한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영국군의 변호를 맡아 진실을 밝혀내 무죄 평결을 받아낸 일, 그러면서도 영국의 부당 행위가 계속되자 누구보다 독립에 앞장선 일, 아내 애비게일과의 잔잔하면서도 깊은 사랑 등이 흥미롭게 기술돼 있다. 주위의 조롱과 비난 속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정치인으로 여겼지만 이제 그는 ‘미국 보수주의의 아버지’라는 평과 함께 제퍼슨과 맞먹는 대접을 받고 있다.
지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존 매케인은 오랜 시간을 베트남 포로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 하며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줄 것을 호소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적군에 잡혀 고생한 것은 인정 받을만 하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 스토리 전부는 아니다. 젊은 시절 스트리퍼를 비롯 숱한 여성과 놀아난 그는 모델 출신인 첫째 부인과 티화나로 도망가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월남전에서 돌아와 아내가 교통 사고로 불구자가 되자 부자집 상속녀와 다시 결혼했다. 이로 인해 전처와 사이에서 난 자식과는 오랫동안 의절하고 지냈다. 그는 첫 번째 결혼이 파탄 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었음을 순순히 고백하고 있다. 이런 인물이 가정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공화당의 대선 주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기는 암에 걸려 입원 중이던 아내에게 이혼장을 내민 뉴트 깅그리치도 마찬가지지만.
트루먼이나 애덤스처럼 역사적 재평가를 거쳐 후대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업적도 업적이지만 인격적으로 깨끗하다는 점이다.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빌 클린턴 같은 인물이 훗날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대선 시즌을 맞아 정치인의 인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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