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9일 북한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식 행사에 김정일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건강이상으로 드러나면서 향후 북한의 진로와 이에 따른 영향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8월14일 이후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김정일은 두뇌혈관이상으로 수술을 받은 후 의식을 회복했고 말은 할 수 있으나 신체일부가 마비되었으며 행동이 부자유스럽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건강상태이다.
그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정치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이 경우 북한의 권력구도가 변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독재국가에서 권력의 변동은 치열한 투쟁을 겪게 되므로 이 과정에서 과연 북한이 연착륙을 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거리이다. 어떤 경우에는 북한의 내부진통이 한국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미 북한에서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최근 북한의 핵 불능화 선언과 원상회복 선언이 김정일의 와병중 군부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라는 견해도 보도했다.
김정일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정권이양이 이루어질 경우 전문가들은 3가지 형태를 예상하고 있다. 첫째는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나 배다른 차남 김정철이 후계자가 되는 3대 세습이고 둘째는 김정일 통치기간 중 막강한 파워그룹이 된 군부가 실권을 잡는 경우이며 세째는 당 간부와 관료, 군부가 세력을 나누어 집단지도체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이후의 권력구도가 어떻게 형성되든 간에 그 과정에서 엄청난 권력투쟁을 겪게 될 것이며 일단 권력구도가 정해진다고 해도 권력투쟁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번 김정일의 와병사실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최근에는 북한의 붕괴가능성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파탄상태에 빠져 국가를 지탱하기 어려운 처지인데 이런 상태에서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개방개혁을 하지 못하고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는 철권정치를 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국가가 계속 존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대중봉기가 일어나기 어렵다 하더라도 상층부에서 균열이 생기면 집권세력내의 내분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북한이 앞으로 내부적으로 요동치는 사회변동과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면 이것은 한국에 중대한 파장을 미친다. 북한에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로 무장된 117만 대군이 있고 강력한 군부가 권력집단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이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북한내부에서 발생한 압력이 한국을 강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개입이다. 북한에서 정권의 붕괴나 사회혼란이 발생하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영향이 미치게 되므로 중국은 이런 사태에 대비할 것이고 이와 같은 사건을 기회로 삼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서는 절대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 내에서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면 중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한에서는 친중 정권이 수립되며 북한이 중국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태는 우리에게 통일의 희망을 완전히 앗아가는 심각한 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위기는 기회라고도 한다. 한국이 북한의 사태에 대응하기에 따라서는 북한의 붕괴나 혼란이 남북통일을 달성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위기는 반드시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위기이다. 한국의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위기를 돕기 위한 만반의 대책을 갖추어야 하고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미간의 결속을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한국의 운명에 불리하게 북한사태를 끌고 갈 때는 미국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관계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유엔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북한에 자유선거를 통한 정부를 수립하여 국가연합이나 연방국가의 형태로 통일의 물꼬를 틀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김정일의 와병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함을 일깨워 주었다. 북한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는 모르지만 언제라도 갑자기 붕괴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비한 구체적 대안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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