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방학을 앞둔 초여름의 뉴욕 다운타운에서 동부지역에서 잘 알려진 어느 고참교수가 느릿느릿 게으름 피우며 대부분은 놀고 한둘만 도로포장공사 일을 하고 있는 시 노동직원들을 보며 한말이 있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아마 지금 저 밖에서 저 일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일하는 이들 전부가 흑인이었고, 그 교수도 흑인이다.
스탠포드 부설 후버연구소에서 고참연구원 (Senior Fellow 인데 필자는 한국매스컴에서 이를 계속 수석연구원이라 쓰는 번역이 너무 싫다) 으로 있는 톰 소월이 언젠가 우리 학회 초청연사로 와서 한 말이 있다. 사회에서 계속 수탈당해서 흑인들이 이렇게 가난과 나쁜 버릇(술, 담배, 마약,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데, 누가 얘기 한번 해보라. 이웃에서 보는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이민자들은 1세들이 빌딩청소하고 세탁소에서 12시간씩 일하면서 고생하더니 그 아이들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고 육사에 들어가더라. 창피해서 후생복지혜택 신청 않거나 모르고 사는 그들과 복지에 길들여진 이곳 흑인들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봤는가. 바른 말 잘해서 필자가 좋아하는 이 칼럼니스트도 흑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서거 이후에는 사실 미국에 뛰어난 흑인지도자가 없다. 어리거나 젊은 흑인들이 보고 배울 점이 있는 큰 지도자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자주 듣는 제시 잭슨이나 알 샤프튼 같은 이들이 제일 유명한 사람들인 셈인데 이들이 누구인가. 미국의 주류경제계에 몸을 담고있는 사람들은 이 두 ‘목사’를 민권운동가라고 매스컴에서 얘기하면 웃는다. 회사에서 게으르고 일을 못해 해직한 흑인직원이 있거나 판매에 도움이 안 되서 흑인동네에서 점포를 철수하거나 하면 이들이 앰뷸런스처럼 찾아온다. 며칠 공갈협박을 하고나서 이들이 받아가는 게 자기가 하는 커뮤니티 단체에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그 단체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이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우리 한인사회에서 보고 겪는 흑인들 중 상당수는 화난 표정이다. 위의 두 사람을 비롯해서 미국태생의 흑인들 중엔 미국사회의 모든 흑인문제가 백인 및 다른 민족들의 수탈과 무관심에서 온다는 논리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오바마 후보의 탄생자체를 반기지 않는다. 같은 시카고 흑인사회 출신이지만 제시 잭슨은 얼마 전에도 쓸데없이 오바마 후보 욕을 했다가 뒤에 궁지에 몰리니까 사과를 한 적이 있다.
항상 화난 상태가 자연스러워진 이들에겐 오바마 후보가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당혹스러울 수 있다. 피해자로서 항상 억울해져야 당연하고 그래야 무엇을 요구할 핑계가 버릇이 된 이들에겐 흑인출신이 백악관에 들어가 버리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소수민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프로그램도 이젠 다른 각도로 접근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대통령을 배출한 민족이 항상 수탈당한 역사 때문에 진출을 못하니 특혜로 봐줘야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통하겠는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흑인문제가 새로운 각도로 미국인들에게 보여 지기 시작했다. 위의 몇 가지 얘기에서 보듯이 ‘흑인’이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고 흑인을 한가지로 정의하기도 이젠 힘들어졌다.
대학을 나온 흑인여성들은 지금 같은 수준의 남자를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흑인 젊은 남성들의 거의 절반이 평생중 한번은 감옥구경을 한다는 통계가 말해 준다. 그래서 교육받은 흑인여성들 상당수가 자기보다 경제적 지위나 신분에서 떨어지는 남자와 살거나 미혼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흑인학생들을 특혜로 대거 뽑기 시작한 지도 이제 수십년이 지났다. 원래 노예 신분의 조상을 가진 흑인학생들을 배려해서 생긴 프로그램인데 현재 아이비리그에 재학 중인 흑인학생들의 40프로가 해외에서 태어난 이민 1세거나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2세들이다. 오바마 후보의 흑인아버지도 해외에서 온 미국대학원 유학생이었다. 해외출신 흑인들의 가정에 결손가정이 적고, 그들의 가족수입도 미국태생 흑인가정 수입보다 훨씬 높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으면서 주류사회에 적응해서 성공하면 흑인들은 Uncle Tom 이라고 비하해서 말한다. 좋은 예가 클레어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들었던 욕이다. 컬럼비아 대학에선 뉴욕시 공립학교에 학생인턴들을 보내는데 그들이 돌아와 하는 얘기가 기가 찬다. 흑인학생들 중 제대로 영문법에 맞는 말을 쓰면 다른 흑인학생들이 따돌린다고 한다. 흑인 특유의 말을 써야 끼워준다는 것이다.
흑인사회의 이런 측면을 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있다. 자식들에게 모두 내 책임이요 하는 책임감을 가르쳐주는 것이 재산 얼마 남겨주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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