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노부부의 집 리스팅을 받게 되었다. 한 달 전 미국에서 수 십 년을 살면서 일에만 매달려 살다 보니 한 편으론 너무 단순하게만 살아온 것 같다며 깨끗한 시니어 타운으로 옮기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다.
나이는 드셨지만 밝고 고운 미소를 던지는 부인에게서 하얀 백합꽃이 연상되었다. 쉽지만은 않은 이민생활을 잘 견뎌내셨다는 표현이 낯설 만큼 뽀얀 피부에 눈가에 곱게 자리 잡은 얄팍한 주름마저 아름답게만 보였다.
교민 누구를 만나더라도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소설 한권쯤은 된다는 표현을 자주 듣지만 두 분에게 그저 평탄한 시절만 지내신 듯한 느낌만을 받았다.
시니어 타운 여러 도시 중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다가 애리조나 주가 마음에 든다며 단 이틀에 걸쳐 본 그 시니어 타운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그간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을 팔아 타주로 이주하려다 혹은 이주했다가 돌아오신 분들을 더러 뵈면서 그렇게 25년 이상 살아온 고향 같은 도시를 떠나 쉽게 옮기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현지라도 다녀오면 마음이 달라지지 않으시려나 했지만 리스팅 사인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 목소리에 강한 힘이 담긴다.
뭔가 새로운 결정 속에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 좋아지면서 따스한 대화를 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을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성과 미모를 갖춘 부인이 미국에서 아는 분을 따라 세탁소 일을 하면서 작은 행복을 배울 수 있었다는 말로 살아 온 여정을 열어 보였다.
영어가 서툴러도 부인의 밝은 미소에 고객이 늘고 말 한마디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 미국인 이웃들에게서 단순한 행복과 감사를 배우면서 글쓰기는 접더라도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는 표현에 경이감이 들었다.
한국에서 했던 일, 하고 싶었던 일을 이민 와서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아실현이 어려워 갈등을 느끼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성공으로 가는 길이 단축될 수도 있는데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를 겪기 전에 그 노하우를 미리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버거운 현실에서 서로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것만이 빨리 이민생활에 자리를 잡게 하는 원동력이 됨을 알면서도 선뜻 실천해 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문학을 꿈꾸던 이가 곱게 다림질한 옷, 깨끗이 세탁한 옷을 고객이 환한 미소로 받아갈 때 무엇보다도 기뻤지만 녹내장으로 수술한 남편의 수술경과가 좋지 않아 초점이 맞추기 어려워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운전도 어려워 처음엔 일일이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행동반경도 좁아지자 그 때부터 부인은 인터넷과 가까이 하면서 무엇이든 필요한 책이나 물건들을 편하게 배달받게 되었다.
컴맹이라며 컴퓨터 쓰기가 쉽지 않았는데 운전을 못하는 대신 인터넷 속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
잘 키운 자식들이 제각기 자기 삶을 찾아 독립하자 그간 열심히 일만 해온 남편에게 휴식을 주고자 시니어 타운을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애리조나 주에 새롭게 분양하는 콘도를 사면서 단지 내에 골프장, 마켓, 교회 등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고 시니어들만 모여 살아 너무 좋다며 그간 열심히 살아온 젊은 시절을 보상받는 느낌이라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이제는 남편과 팔짱끼고 다니면서 연애하는 마음으로 살 거예요. 좋은 느낌을 글로도 옮겨볼 거구요.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 살 맛 난다니까요!” 운전 때문에 남의 도움을 일일이 받기보다 타주에 가서라도 내 마음 편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두 분들의 청사진이 멋지게만 보였다.
“남은여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우리는,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그저 예쁘다고 끼고 있던 집을 팔고 우리가 편하게 있을만한 공간으로 옮기는 것만이 내 고집으로 움켜쥐고 있는 그 구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배경이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린 거지요.”
웃으며 사인하는 두 분에게서 더 큰 행복이 자리 잡기를 그리고 마음의 보따리를 소박하게 꾸린 그들에게 부디 아름다운 황혼이 놓여 지시길 간절히 고원해 본다.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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