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형제가 있었다. 한 사람은 바다로 나갔고 다른 한 사람은 부통령이 됐다. 그 후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워싱턴 정가에서 오래 전부터 회자되는 조크이다. 부통령은 존재감을 찾아보기 힘든 자리라는 것을 빗댄 농담이다.
부통령을 대상으로 한 풍자의 압권은 1932년 퓰리처상을 받은 연극 ‘내가 노래하는 당신’이다. 이 풍자극에 등장하는 가상의 부통령 알렉산더 스포틀보텀은 할 일이 없어 백악관 밖에서 비둘기 먹이를 주는 것으로 대부분 소일한다. 대통령은 철저히 그를 무시한다. 그러다가 거의 잊혀 진 존재가 되어 버린다. 결국 그는 백악관 출입을 위해 단체관광객들 틈에 끼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시집살이를 험하게 한 며느리일수록 시어머니가 된 후 고된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했던가. 부통령 시절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무시당하다가 대통령이 된 인물일수록 자신의 부통령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루즈벨트 밑에서 기를 펴지 못했던 해리 트루먼은 대통령이 되자 부통령 버클리를 심하게 구박했다. 트루먼의 견제가 얼마나 심했던지 버클리는 자신을 불 꺼진 야간 야구경기의 포수에 비유했다. 투수가 무엇을 할지 전혀 알지 못 한다는 자괴감의 표현이었다.
2인자의 처신은 정말 어렵다. 형식상으로는 1인자 다음의 서열이지만 실제로 그에 걸맞은 권력이 부여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의 부통령만 해도 그렇다. 유일한 합법적 임무는 상원의장이 되는 것과 상원에서 찬반동수일 경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것 정도이다.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겨야만 제대로 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니 처신이 쉬운 일은 아니다.
2인자라고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견제의 대상이 된다. 민주적 분위기의 조직에서는 눈총과 자리보전 문제로 끝나지만 서슬 퍼런 절대권력 아래서는 생사의 문제가 된다.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절묘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처신이 요구되기도 한다. 1인자가 되기보다 더 힘든 것이 2인자 되기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2인자 홀대 분위기는 금세기 들어 확연히 바뀌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처럼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에서는 2인자들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식산업 시대에 2인자는 1인자에게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 그래서 2인자를 ‘공동 리더’라고 부르는 기업들도 있다.
2인자는 최고리더와 나머지 조직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이다. 지난 세기 최고의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뉴욕 필하모니의 레너드 번스타인이 음악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러 질문을 받았다. “오케스트라는 많은 악기들로 구성돼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번스타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이렇게 대답했다. “제2 바이얼린입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팬들에게 그는 이런 설명을 들려줬다. “제1 바이얼린에 비해 제2 바이얼린은 덜 돋보입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 고음부와 저음부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는 제2 바이얼린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 전체적인 음향의 균형이 무너져 내리게 되고 그러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허약하고 신경질적인 소리가 돼 버립니다.”
제2 바이얼린은 청중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전체 화음에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언뜻 없는 듯 보여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이것이 뛰어난 2인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왕국을 세운 빌 게이츠에게는 20여년 동안 2인자로서 묵묵히 그를 보좌해 준 스티브 발머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빌 게이츠 없이는 나아갈 수 있어도 발머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의 말은 발머의 역할을 웅변해 준다.
민주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가 조셉 바이든 연방 상원의원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결정했다. 공식 발표 전 내심 바이든을 정한 오바마는 “독립적이고 나의 선입견에 맞설 수 있으며 나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 백악관에서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오바마가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낙점한 이유이다.
2인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직언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오바마가 지적했듯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비판할 줄 아는 용기야 말로 2인자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을 수용하는 1인자의 태도이다. 가장 뛰어난 2인자로 평가받는 발머는 게이츠에 대해 “그는 알력이 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회사에 심어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능력 있고 뛰어난 2인자는 이런 1인자가 있는 풍토에서 가능하다. 결국 2인자가 별 볼일 없는 장식물로 전락하느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 되느냐는 많은 부분 1인자의 현명함에 달려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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