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입장할 때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의 반응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입장한 자국 선수단을 향하여 기립박수와 함성으로 장내가 떠나갈 듯한 환호를 보낸 관중은 미국이나 러시아 등 강대국과 이라크 등 특별한 나라의 선수단에 대해서는 환대를 했다. 그런데 176번째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큰 반응이 없다가 180번째 북한 선수단의 입장과 함께 북한의 국명이 호명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이 중국과 무척 가까운 줄로 알았었는데 이번 입장식에서 나타난 반응을 보니 그게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올림픽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중국 관중들의 태도는 한국에 대한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아주 푸대접이었고 사사건건 방해를 일삼았다. 양궁 경기에서 한국선수들을 방해한 것은 자국팀의 승리를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선수들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 무조건 다른 나라를 응원한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중국 관중은 16일 한일 야구에서 일본을 일방적으로 응원했고 17일 한일 탁구에서도 일본을 응원했다. 또 한국이 미국, 스웨덴, 온두라스 등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마다 한국의 상대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중국 관중은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이 우승하고 한국이 참패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기장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는 이런 반한 기류가 더욱 넘쳤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한국과 쿠바가 야구전을 벌이는 동안 쿠바를 응원하는 네티즌들로 넘쳤다고 한다. 어떤 네티즌들은 한국팀을 “하찮은 놈들”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올림픽 개막식 이전부터 인터넷에는 “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박수를 치지 말아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떠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에 대만 언론들은 “한국인들은 공자, 노자, 석가모니와 손문도 한국인이라고 하고 만리장성도 자신들이 축조했다고 주장한다. 중국 미인인 서시도 한국인이라고 할 정도다. 우리 역사를 훔치는 한국인은 얼마나 후안무치한 민족인가”라고 대서특필 했다. 한국인이 결코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억지로 뒤집어 씌워놓고 매도했던 것이다.
한 때 한류바람이 대만과 동남아를 거쳐 중국 본토까지 세차게 불어 닥치자 중국에서는 ‘대장금’을 중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드라마로, 한국 민족을 중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민족으로 뽑았다. 이렇게 보니 한국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중국 뿐 아니라 중화권의 공통된 현상인 것 같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싫어한다는 이유는 한국이 자기네 역사를 훔쳤고 지난번 서울의 성화 봉송 때처럼 중국인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타당치 않다. 역사를 훔쳤다면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중국이 우리 역사를 훔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중국 역사를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또 성화 봉송 때만 해도 중국인들이 서울 거리에서 부린 행패를 한국은 꼼짝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다만 한국이 중국보다 일찍 경제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에 중국의 개방 초기에 일부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깔보는 행동을 했을 수도 있으므로 그런 점에 대한 반감은 일부 납득이 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의 일부가 아니라 전반적인 대한감정이 좋지 않다면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 세계의 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중화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중화사상은 중심에 중국이 있었고, 그 변두리에는 동이, 북적, 서융, 남만이라는 동서남북의 오랑캐가 있었다. 그 중에 돌궐이나 흉노 등 북적은 사라지고 그 땅은 중국 영토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서융인 티베트마저 합병했다. 남만은 지금의 인도지나인데 모두 공산권으로 중국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다. 그런데 동이는 한민족인데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과학기술과 경제 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중국에 앞서 있다. 중국인들은 그 한국까지 중화중심주의에 끌어들여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지난번 숭례문 화재 때도 중국 네티즌들이 서울을 “고려성의 성도 한성”, 한국인들은 “한국성의 인민”이라고 비하했다. 이처럼 한국을 자기네의 변방으로 생각하고 싶은 중국인들이기에 지금의 한국에 대해 시기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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