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 결 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물가가 살인적으로 비싸다는 것이다. 로마나 파리의 경우 낡은 침대 하나만 덜렁 있는 호텔 하나가 보통 300~ 400달러씩 하고 둘이서 저녁 한번 제대로 사먹으려면 200달러 이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 사람들은 그렇게 물가가 비싼 줄 모른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15개국 3억2,000만명의 유럽인들은 2002년부터 공용 화폐인 유로를 쓰고 있다. 2000년대 초 80센트면 1유로를 살 수 있던 것이 지난 수년간 달러화가 폭락하면서 지난 7월에는 사상최고치인 1달러 60센트를 줘야 간신히 1유로를 얻을 수 있었다. 몇 년 사이 달러가치가 반값이 돼 버렸으니 미국에서 관광 간 사람들이 비싸다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1999년 처음 유로화가 회계 처리용으로 도입됐을 때만 해도 유로화는 달러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그 때만해도 미국 경기가 인터넷붐으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고 연방 재정도 흑자로 돌아서는 등 탄탄했을 뿐더러 언어와 경제 수준이 서로 다른 유럽 각국이 단일 화폐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지가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리라, 스페인의 페세타, 그리스의 드라크마 등이 모두 약세인 것도 유로화에 대한 비관론을 증폭시켰다. 모음으로 끝나는 화폐는 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분석들은 유로화가 상승일로를 걸으면서 모두 힘을 잃었고 오히려 “달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젤 번천을 비롯한 수퍼 모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달러화로는 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가 하면 중동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외환 보유고 중 달러화의 비중을 줄이고 유로화를 늘릴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거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신용 경색, 무역 및 재정 적자 증가, 투자가들의 미국 시장 이탈 등 악재가 겹쳤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달러에 대한 비관론이 극에 달했을 때 달러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사이 유로화와 일본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서 10% 가까이 오른 것이다. 18일 달러는 유로에 대해서는 1달러46센트, 엔화에 대해서는 110엔 대를 기록하고 있다.
환율은 어느 정도가 적정선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결국에는 구매력이 비슷한 선에서 안정된다는 설이 유력하다. 똑같은 물건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보다 반값에 판다면 그 나라 물건을 사러 돈이 몰려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나라 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어 화폐 가치가 비싸지기 때문에 나중에 가면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 나라마다 인건비와 렌트비 등 고정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항상 들어맞지는 않는다. 또 장기적으로는 그 수준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환율 동향은 신만이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 기준으로 따져 어느 나라 화폐가 얼마나 과대 평가돼 있는 가를 손쉽게 재는 지수가 있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으로 그 나라 화폐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복잡한 계산보다 오히려 정확하게 그 나라 물가와 화폐 가치를 평가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빅맥 지수에 따르면 유로화는 달러에 대해 50% 과대 평가돼 있는 반면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화폐는 각각 49%, 27%, 12% 평가 절하돼 있다.
가장 과대 평가돼 있는 화폐는 노르웨이 크로네로 120%, 다음이 스웨덴 크로네 79%, 스위스 프랑 78%순이며 가장 과소평가 돼 있는 것은 홍콩 달러 52%, 말레이시아 링깃 52% 등이다. 환율이 결국 구매력이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인다면 달러화는 유로화 등 유럽 화폐에 대해서는 오를 가능성이, 한중일 등 아시아 화폐에 대해서는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달러화의 상승세가 계속 되리라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지난 한 달 간 달러가 오른 것은 미국 경제가 근본적으로 좋아져서가 아니라 그 동안 워낙 떨어진 데 대한 반등에다 유로권 경기의 둔화로 인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를 점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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