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깨끗하지만 비어 있다. 내가 묶고 있는 셰라톤 호텔도 그렇다.
한 층을 통틀어 숙박객은 나 하나뿐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올림픽 개막 D-5일이었나. 그 시점에 북경에서 전해진 말이다. 마치 계엄령이라도 내려진 것 같다는 거다. 불온한 움직임을 당국에 고발하는 사람들이 깔려 있고, 거리는 한산해 별 다섯 개의 고급 호텔이 텅 비어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 호텔들은 그러나 올림픽이 열리면 모두 꽉 찰 것이라고 한다. 외국인들로가 아니다. 중국 관리들로 꽉 찬다는 것이다. 정부가 그런대로 축제분위기는 잡아 간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상한 파티다. 손님들로 북적거려야 한다. 그런데 손님이 오는 걸 막는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것 같으면 아예 입국을 봉쇄한다. 이번 올림픽은 보안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극히 재미없는 올림픽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북경 발 전언이다.
“중국이 보여주는 것만 보라는 올림픽이다.” 이번에는 외국 특파원들의 볼 멘 소리다. 그렇지 않아도 온통 제한 투성이다. 응원이 제한된다. 시위도 정해진 공원으로만 제한된다. 거주지도 제한된다. 거기다가 외국 언론의 취재에까지 제한이 가해지고 있어서다.
언론자유를 보장한다던 당초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권이니, 티베트 관련 인터넷 사이트는 모두 봉쇄됐다. 외국기자들도 접속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가 꽤나 시끄러워지자 결국 후진타오까지 나서서 해명을 했다.
‘보여주는 것만 보라’는 식의 발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경거리 이곳저곳에는 얼마 전까지 없던 담이 쳐졌다. 높이가 10피트에 이르는 높다란 장벽이다.
지방 관리의 횡포에 못 이겨 탄원 차 북경에 왔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슬럼가가 형성됐다. 그 주변을 벽을 쌓아 막았다. 그뿐이 아니다. 전통적인 북경의 뒷골목 모습도 볼 수 없다. 역시 높다란 장벽이 쳐진 것이다.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엇갈리는 현상들과 관련해 새삼 제기되는 질문이다. 중국의 영광, 세계적 파워로 부상하는 중국을 전 세계 외국인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 측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전체 중국 인민에게 현 체제의 위용을 과시하자는 것이 아닐까. 북경의 지도자들이야 말로 중화 민족주의의 전위 그룹이자 수호자란 사실을 중국인들에게 각인시키는 게 그 ‘넘버 1 프라이어리티’란 이야기다.
공산당 이데올로기는 죽은 지 오래다. 돈과 중화 민족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경제발전을 위한 안전판으로써 군사적인 확장주의를 추구한다. 경제성장은 따라서 지상명령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중화민족주의에 편승해야 한다. 그 길만이 체제유지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러면 북경당국의 일방 통행성의 드라이브인가. 아닐 것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한 연구진이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앤드류 네이던 교수가 이끄는 이 연구진은 아시아 각국의 민주주의관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권위주의 형 체제인 중국에서 체제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것. 반대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한국, 일본 같은 나라일수록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하나.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조기 기대는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마도 방대한 중산층이 비(非)민주체제를 떠받드는 그런 기이한 형태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중산층이란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 소르망의 지적이다. 중국의 중산층은 공산당 일당체제에 기생하는 계층으로, 그들의 경제적 번영은 당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과의 ‘관시’(關係)다. 이런 그들은 결코 민주주의 선망세력이 아니라는 진단이다.
결론은 이렇게 지어지는 것 같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보든 관계없다. 중화 민족주의를 드날리면 그로써 대만족이다. 그래서 특히 중요한 것은 메달 수다. 어떻게든 메달경쟁에서 1위를 차지해야 한다. 미국을 제치고. 그 길만이 오랜 중국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민족주의의 광기에 휩싸인, ‘그들만의 잔치’가 북경 올림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이다. 민족주의는 항상 과도한 경쟁을 촉발시킨다. 그리고 종종 적(敵)을 필요로 한다. 그 병든 맹목적 중화 민족주의의 현실은 성화 봉송 폭력사태에서 이미 드러났다. 북경 올림픽은 어떤 올림픽이 될까.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옥 세 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