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그로미코는 최장기간 소련 외상을 지낸 인물이다. 이 그로미코에게 별명이 하나 있다. ‘Mr. Nyet’이다. 서방의 제안은 무조건 반대다. 냉전시대 그가 그래서 유엔에서 한 일은 오직 ‘nyet’(‘no’라는 러시아어)을 복창한 것뿐이다.
유엔이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 ‘nyet’ 소리가 또 다시 들려오면서다. 그 날, 그러니까 2008년 7월11일 서방은 짐바브웨 제재안을 유엔 안보리에 상정했다. 러시아가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그 광경이라니, 60년대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다.
설마 했었다. 심지어 중국도 기권할 것이라는 게 일반의 예상이었으니까.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극악한 폭정 체제다. 그 짐바브웨 제재안이다. 그러니 중국조차 반대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고 본 것. 러시아가 그런데 중국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왜 거부권을 발동했나. 지금까지 계속 던져지는 질문이다. 중국 같이 아프리카에 이해가 걸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무리수인가. 갖가지 설이 오가는 가운데 답은 한 가지로 귀착되고 있다. 인권문제다.
“인권신장은 국가와 집단 간의 불평등을 제거하고 안보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전략이다. 한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면 국제 공동체는 유엔 헌장에 명시된 적법 수단을 이용해 개입해야 한다. 그 개입은 주권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 방문 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 연설이다. 보편적 인권증진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역설한 것이다.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게 ‘보호해야 할 의무’(the responsibility to protect)란 개념이다.
인권이 국가주권에 우선한다는 개념으로,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국가나, 체제에 대한 외부개입을 정당화 하고 있다. 서방에서는 상식이 된 이야기다.
그 개념에 러시아가 극력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국가 주권이 우선된다.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오늘은 짐바브웨 제재안이지만 언젠가는 러시아 제재안으로 바뀔 수도 있다. 때문에 반대의 명확한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뭐랄까, 어둠은 본능적으로 빛을 거부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을까. 어쨌거나 2008년 7월11일 유엔 본부에서의 해프닝은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을 알리는 사건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세력의 대대적 반격이 시작됐다는.
같은 날이다. 그러니까 2008년 7월11일 새벽. 금강산 해변에서 한국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초병에게 사살됐다. 관광객이, 그것도 50대 가정주부가 관광지에서 그 나라 정부군에게 피살되는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연이겠지. 그러나 공교롭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같은 날 발생한 이 두 사건은 한 가지 연결고리에 묶여 있는 것 같아서다. 무엇일까, 그 연결고리는. 역시 인권이 아닐까.
왜 그들은 가정주부를 무참히 사살했나. 추측만 무성하다. 고의적이다. 우발적이다. 북한 내 권력투쟁 결과다 등등. 답은 그 어느 것이든 관계없다. 본질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으니까.
개인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된다. 오직 수령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 인간 생명의 말살은 기형적 권위주의 체제인 북한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비극 발생의 타이밍이 그런데 자꾸 걸린다.
‘나비효과’라고 했나.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인다. 하나는 뉴욕, 다른 하나는 금강산에서 벌어진 일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이 두 사건이지만 상당한 밀접성을 보인다. 그러면서 뭔가 다가올 일의 예표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권위주의 세력의 반격과 함께 새로운 라인-업이 형성되고 있다. 그 한 축은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형 국가와 이란, 북한 등 ‘깡패국가’들이다. 다른 한 축은 서방으로 통칭되는 자유세계다.” 상당수 논객들의 주장이다.
그 글로벌한 움직임이 한반도에서는 ‘금강산 총격’이란 극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구체화된 게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그 총격으로 ‘햇볕’은 빛을 잃었다. 그동안의 기형적인 남북관계도 종착역을 맞았고.
역설적이지만 이명박 정부로서는 기회다. 새롭게 남북관계를 설정하는 계기가 되어서다. 그 방안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북한 주민을 끌어안는 포괄적 인권정책이 그 초석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관심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새삼 관심이 가는 것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한국의 보수정당들이 연대해 발의한 북한인권법이다. 과연 제대로 만들어낼까. 기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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