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플라자 호텔 2층 부페식당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촛불시위대에 의해 박살났던 바로 그 통유리를 통해 시청 앞 광장을 내려다보니 전투경찰들의 버스로 광장 전체에 보호막을 쳐 놓은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해 보였다. 광우병을 도화선으로 불붙었던 광풍이 드디어 잠잠해진 것이었다.
광우병이 한국인들 의식에 들어온 것은 사실 이명박 정부 훨씬 이전의 일이었고 한국인들은 광우병이란 단어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러 달 전 어느 날 서울에서 친구와 TV 저녁뉴스를 보는데 미국 수입 쇠고기에서 뼈 조각이 또다시 나왔다는 것이 주요 뉴스로 등장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뼈 조각이 왜 문제가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뼈에서 광우병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갈비를 사면 뼈의 부스러기가 묻어 나오는데 그럼 그게 위험하다는 얘긴가 하고 중얼거렸더니, “미국에서 이미 광우병 환자가 나왔다며?” 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어쩐지 자신이 없어 그건 “영국 아니었어?” 하고는 말꼬리를 흐렸었다.
몇 주 전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극에 달했을 때 서울의 한 친구가 인터넷 채팅을 걸어왔다. ‘지금 무얼 하냐’는 질문에 미국 쇠고기로 저녁식사를 막 끝마쳤다고 답했더니 ‘30개월 이내의 소는 광우병 위험이 없어서 미국 내에서 팔고 30개월 이후나 기타 위험부위 쇠고기는 수출하는 거’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나는 솔직히 광우병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고 관심도 크지 않아 이들의 반응이 과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로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위험수위에 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별로 큰 이슈가 되지 않았었고 위험하다면 정부는 즉각 대응했을 것이며 모든 매스컴이 난리를 피울 것이라는 생각을 모든 미국인들은 당연히 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기업을 의심하는 한국인들의 반응을 처음 나는 막연히 반미감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친구들처럼 굳이 미국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 평범한 한국 국민의 상당수가 미국이 한국 국민의 건강을 해치면서라도 쇠고기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믿는 것에 의아해졌다.
실제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다시는 한국에 장사를 할 수 없을 텐데 그런 일을 할 만큼 미국인들이 바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극소수였다.
사람들의 반응을 주시해보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한국민들이 자신들의 정부와 기업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 정부나 기업도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 기회와 필요만 있으면 언제라도 국민들을 속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한국인들은 다른 어느 나라 정부나 기업도 결국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광우병 열풍으로 또 하나 극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깊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은 한국을 우습게 알며 한국인들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상당수 한국인들 의식에 깊이 뿌리 박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세계 12위권 내에 들어선 국가이지만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국민들은 가난한 후진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가졌던 열등감을 미처 벗어던지질 못한 탓일까.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가진 심리의 벽을 넘어야만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여져야만 가능하고 한국인들이 건강한 자화상을 가져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타국인들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으로 살 수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란 사실을 광우병 폭풍우가 시사해 주고 있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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