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377회 패스 성공에 442개의 터치다운 패스, 그리고 6만1,655 패싱 야드 등 NFL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지난 시즌 맹활약했던 그린베이 패커스의 쿼터백 브렛 파브의 플레이 스타일은 지능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다. 필드를 야생마처럼 휘저으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즉흥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언더핸드 스로우가 유독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팬들은 기타리스트의 애드립을 연상시키는 그의 이런 플레이에 열광했다.
파브는 16년간 그린베이 지역의 영웅으로 최고의 활약을 보이다 금년 3월 눈물 속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곤 최근 은퇴를 번복했다. 그의 은퇴 번복 소식은 그를 아끼던 많은 팬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은퇴를 둘러싼 파브의 갈지자 행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2006년 시즌 마지막 경기 후 팀 동료들을 끌어안으며 은퇴를 결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던 파브는 예상을 깨고 2007년 시즌 다시 돌아온 바 있다.
은퇴 기자회견 한 달 후 파브의 결심이 흔들린다는 소식을 접한 패커스 수뇌진은 그가 사는 루이지애나로 날아가 의사를 확인했다. 돌아 온 대답은 “네버 마인드 .” 그러더니 몇 달 안 돼 다시 마음을 바꿔 은퇴 번복을 공식화했다. 은퇴와 관련한 결정 또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닮았다.
난감해진 것은 패커스이다. 파브의 은퇴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미래를 준비해 온 패커스로서는 이런 복귀 선언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자니 파브 이후를 대비해 세워 온 플랜이 뒤죽박죽될 것이 뻔하고 다른 팀으로 보내자니 부담되는 어정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은퇴에 관한 한 ‘양치기 소년’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게 된 파브의 오락가락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는 NFL 최고의 스타였다. 그런 만큼 은퇴 결정에 좀 더 신중함을 보였어야 했다.
파브가 어떤 생각에서 은퇴 결정을 번복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직 더 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수도, 아니면 스팟 라이트가 비켜 가는데 대한 아쉬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장삼이사들의 그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거리가 되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상황이 되면 심각한 공허감에 빠진다. 이것을 잘 극복해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 헤어나오지 못한 채 오래 허우적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세인들의 찬사와 관심의 중심에 오래 서 있던 스포츠 스타들의 은퇴 번복이 유독 많은 것은 그만큼 점차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말해 준다. 대중의 관심은 중독성이 강해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래서 스타들은 은퇴 후 한동안 금단증세에 시달리곤 한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두 번이나 은퇴를 번복하고 코트로 돌아왔다. 돌아온 조던은 여전히 다른 선수들보다는 뛰어난 플레이를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전성기의 그는 아니었다. 조던은 자서전에서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3년을 뛴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투수 로저 클레멘스도 은퇴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스타일을 구겼다. 은퇴의사를 밝혔다가 불혹의 나이에 마운드로 돌아온 클레멘스에 팬들은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파문이 터지면서 그의 노장투혼은 약물의 힘을 빌린 추악한 탐욕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만약 그가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알았더라면 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곤욕은 피해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3세기 로마는 동서로 나뉘었다. 그래서 황제가 두 명이었다. 해방노예 가문 출신으로 서로마 황제에 올랐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동로마의 황제 막시미아누스였다. 치세 21년이 되던 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스로 퇴위를 선언했다. 이에 호응해 막시미아누스 황제도 동반 퇴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막시미아누스는 다시 황제 자리로 복귀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것을 보고 “모든 기술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물러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은퇴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다른 삶의 시작일 뿐이다. 얼마 전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며 직원들 앞에서 “나의 삶의 우선순위가 재배치되는 것일 뿐”이라고 밝힌 것은 이것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파브가 복귀한다 해도 이미 전설이 돼 버린 그의 커리어가 좀 더 빛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소탐대실’의 위험이 높은 결정이다. 팬들의 기억 속에 최고의 모습을 심어주고 떠나가는 일이야 말로 스타가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멋진 플레이가 아닐까.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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