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www.youtube.com)로 들어가서 ‘해나의 점심도시락(Hannah’s Lunchbox)’을 검색하면 흥미로운 비디오가 하나 뜬다. 콜드웰 뱅커가 후원한 2008년 ‘우리 집: 아메리칸 드림’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이 비디오를 추천하는 것은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특별히 재미있어서는 아니다. 13살짜리 소년(해나의 동생 조셉)이 만든 3분짜리 비디오가 훌륭하면 얼마나 훌륭하겠는가. 그 보다 ‘해나의 도시락’으로 이름 붙여진 그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이 정말로 색다르기 때문이다.
집을 장만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인 사회에서 그 가족은 집을 내어 놓는 것을 ‘드림’으로 삼았다.
조지아, 애틀랜타에 사는 설웬 가족이 ‘아메리칸 드림’을 갖게 된 것은 1년쯤 전이었다.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해나(15)가 평범한 한 광경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프리웨이에서 내려 신호대기에 걸려 서있을 때였다. 그들의 앞에는 벤츠가 서있고, 옆 도로변에는 노숙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때 해나에게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앞차의 주인이 저렇게 좋은 차를 타지 않는다면 저 노숙자가 제대로 먹을 수 있을 텐데” -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갖고 못가진 자는 너무 못 가진 사회적 불공평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날 이후 해나 네 가족은 공동의 프로젝트를 갖게 되었다. 세상의 배고픔을 줄이기 위해 뭔가를 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방안들을 논의하던 끝에 그들은 집을 줄이기로 했다. 그 가족의 집은 6,500평방피트 규모, 시가 180만 달러의 대저택이다. 그 집을 팔아 남는 돈의 절반으로 집을 사고, 나머지 절반인 80여만 달러를 기아퇴치 기금으로 쓴다는 것이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해나 네 가족은 많은 일을 했다. 집을 매물로 내놓고, 수많은 자선단체들을 검토한 후 ‘기아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통해 아프리카, 가나의 마을들을 돕기로 결정했고, 부동산 경기 부진으로 집이 안 팔리자 일단 절반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으며, 조만간 가나 방문을 앞두고 있다.
전직 월스트릿저널 기자로 사업가인 케빈과 교사인 조앤 부부 그리고 해나와 조셉 남매가 집을 줄여서 도울 수 있는 대상은 30여개 마을. 2만여 주민이 혜택을 입을 수 있다니 대단한 ‘아메리칸 드림’이다.
심리학자 A.H. 마슬로 박사는 인간의 욕구에 단계가 있다고 했다. 생존에 필수적인 생리욕구에서부터 안전욕구,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 등 5단계이다. 그런데 이들 욕구는 계단을 오르듯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기본적 생리욕구가 만족된 다음에야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도 욕구이고, 아마도 비슷한 단계를 따라 올라갈 것이다. 처음 이민 와서는 먹고살 일자리만 얻어도 만족이다. ‘생리욕구’의 차원이다. 이어 ‘사업 성공’ ‘자녀 명문대 보내기’ 등이 ‘드림’으로 자리 잡는데 이 모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연결된다. 욕구의 4번째쯤 되는 그 단계에서 대개의 ‘아메리칸 드림’은 멈춘다. 하지만 간혹 예외가 있다.
1975년 하버드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은 친구들이 답답했다.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뭔가 큰일을 해볼 생각을 안 하고 좁은 성공가도에만 안주하려 드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그해 봄 그는 과감히 하버드를 중퇴하고 회사를 차렸다. 퍼스널 컴퓨터의 혁명을 일으킨 빌 게이츠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게이츠가 지난달 27일 은퇴를 했다.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이고 최대주주이지만 회사 일은 일주일에 하루만 보고, 자선단체인 빌 & 멜린다 게이츠재단 일에 전념하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제1의 부자로 엄청난 부를 끌어 모으던 단계에서 이제는 축적한 부를 풀어내는 단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게이츠, 설웬 가족 … 흔치는 않지만 우리 주위에는 위대한 ‘드리머’들이 있다. 욕구 혹은 ‘아메리칸 드림’의 마지막 단계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게이츠처럼 수백억 재산은 없지만, 설웬 가족처럼 대저택은 없지만, 각자 형편껏 닮아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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