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의 어느 날 아침 베트남 남부지역의 밀라이라고 알려진 몇몇 촌락에 미군 바커 기동타격대가 들어갔다. 이 부대의 임무는 숨어 있는 베트콩들을 찾아내 사살하는 것이었다. 이 마을이 있는 지역은 베트콩의 소굴로 알려진 곳. 정보대가 이곳에 베트콩들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보내왔다.
토벌에 투입된 바커 부대는 변변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부대원들에게는 전투요원과 비전투 요원을 구분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또 부대원들은 비전투 요원을 해치거나 무기를 버린 전투요원을 살해하는 행위는 전범이 된다는 제네바 협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토벌은 한나절 내내 계속됐다. 토벌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5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의 사체가 나뒹굴었다. 죽은 사람들은 전혀 무장을 하지 않은 노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아녀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밀라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으며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밀라이 대학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였다. 한 미군이 친구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밀라이에 관한 얘기를 전해 듣고 연방하원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대학살을 알렸다. 우연한 사적 대화가 단초가 돼 밀라이 대학살의 진상이 드러난 것이다.
바커 부대의 한 소대는 마을 사람들을 수십 명 단위로 모아 놓은 후 소총과 기관단총, 그리고 수류탄을 사용해 마구 살육을 해댄 것으로 밝혀졌다. 대학살에 참가 해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추정된 부대원만 최소 50명이었고 200명 이상이 학살을 목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에 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밀라이 대학살은 은폐될 뻔 했다.
밀라이 대학살을 둘러싸고 계속된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민간인들을 향해 겨눴던 총구가 정당했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아니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스스로 지워 버리는 정신적 기제의 작용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쟁이 이성의 마비를 가져 왔다는 점이다.
평화 시에 법과 규범, 그리고 도덕으로 규제되던 공격성과 폭력성이 전쟁을 만나면 거침없이 분출된다. 오히려 이런 성향이 영웅화되기도 한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살상을 계속하다 보면 밀라이 대학살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기억상실증이나 전투치매증에 걸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전쟁의 해악은 ‘집단 악’이다. 집단속에서 개인들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에 퇴행성을 보인다. 전쟁이라는 만성적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악한 행위를 저지르고도 명령이라는 구실 하에 그 도덕적 책임을 집단에 전가시키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돼 왔다.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초래했던 2차 대전이 끝나자 사람들은 이제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90년 사이 총 2,340주 가운데 전쟁의 총성이 멈췄던 기간은 단 3주에 불과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의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홉스봄이 언급한 기간 중에 일어난 대표적인 전쟁이 한국전이다. 최근 미국의 기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AP통신은 한국전 초기에 한국군과 경찰이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좌익 인사와 동조자들을 기소나 재판과정 없이 집단 처형했으며 미군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사실이 미 국립문서 보관소의 비밀해제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좌익도 우익인사들을 무수히 학살했으니 이런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집단처형에 참여했던 군인들과 경찰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 길도 없다. 아마 그들 또한 누군가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자상한 남편이고 착한 아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감수성 예민한 청년이었을 지도 모른다.
‘의로운 우리 편’에 의해 이런 만행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은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집단 악’은 이념의 색깔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런 불편한 진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전쟁은 선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속에서 개인은 악의 얼굴을 강요받는다. 정치적으로 유용한 전쟁은 있을지 몰라도 인간에게 좋은 전쟁이란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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