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어느 날의 신문 광고이다. ‘한국어 조기 유학생 모집’ 한국 내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설을 소개함. 비교적 큰 지면에 학습 장소, 교육과정, 담당 교사의 사진과 경력, 숙소까지 알리는 광고이다. 이것은 K씨가 대박을 예상한 신종 상품이다. 그런데 이 광고가 나가고 한 달이 되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그래서 K씨는 홍보원들을 불러 그 이유를 알아 보았더니 그들의 보고는 실망스러웠다.
한국어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알지만, 조기 유학이란 당치도 않다. 영어를 겨우 말하게 된 자녀들을 유학보내다니… 한 가지 언어라도 제대로 기초
를 다져야 하는데…. 어린이들이란 부모와 함께 가정 생활을 하면서 인성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방학 동안에 한국에 보내면 되는 걸… 한국 내라면 친척도 있는데… 웬 조기 유학? 등등 미국내 부모들은 냉정하더라고. 그들은 한국어 교육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 내의 자녀 교육열을 본받아야 하고 말고. K씨는 긴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K씨의 캐리커쳐이다.
한국 내의 조기 유학 붐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린 자녀를 따라 엄마가 동행한다. 아빠는 한국 내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한다. 그러다가 가끔 외지의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으면 기러기가 되고, 경제 사정으로 여의치 않으면 펭귄이 된다고. 쓸쓸한 이야기이다. 이런 현상이 일과성 시대의 풍조일까, 아니면 자녀 사랑의 옳은 길일까.
요즈음 나온 신문 기사 중에서 주의깊게 읽은 것이 있다. 동남 아시아에 조기 유학한 학생들을 추적한 기사였다. 거기에 따르면 경제적인 상류층 자녀들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나고, 중류가정 자녀들은 주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취학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나 대체로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학생 수효를 보아 국제학교는 한국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지역의 유명교에 들어가기 위해 학원에서 사전 준비 교육을 받는다고. 입학 후에도 학교가 끝나면 몇 가지 학원에 등록하여서 학습을 보충한다는 것이다. 당지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 친구보다는 외국 친구하고 사귀도록 권장한 결과는 한국어가 어스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몇 회분의 기사를 읽으면서 자녀 사랑의 참뜻에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영어가 뭐길래’라고 탄식하며 어린이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와 한국어. 현재 한국 내에서는 영어 몰입 교육 운운하고, 해외에서는 한국어 교육에 정성을 쏟고 있다. 한국어는 한국 국어이다. 영어는 미국 내의 생활 도구이다. 두 나라 안에서 각각 국어의 기초 교육을 먼저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이중언어 교육, 대중언어 교육을 할 수 있다.
몇 가지 언어교육을 병행하더라도 기초 언어 능력이 확실해야 효과를 더 올릴 수 있다. 언어교육에는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것과 세계관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을 하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세계의 미아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근래는 실용성까지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을 제외한 고객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란 없기 때문이다.
조기 교육은 언어뿐이 아니라 다른 교육에도 효과를 올리고 있음은 이미 증명이 된 사실이다. 그러나 조기 교육과 조기 유학은 다르다. 교육 목적은 같아도 접근 방법이 다르다. 조기 유학이 정서교육·인성교육 기타 가족 화합에 영향을 줄 때는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자녀들을 위한다는 일이 결과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면 작은 일이 아니다.
글 첫 부분에 나왔던 K씨에게 부탁한다. 이 지역 부모들이 한국어나 한국문화 교육을 위하여 한국에 조기 유학을 보낼 생각이 전연 없음이 다행이다. 그만큼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어 고맙게 생각한다.
사람의 욕심은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다.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낼
필요가 없이 이 지역의 교육 시설을 활용하도록 광고를 내달라는 부탁이다. 이하 광고문. 이 지역 한국학교는 여름 동안 재충전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귀한 자녀들을 맞이하려고. K씨, 이번에는 틀림없는 대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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