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없는 시대이다. 메릴랜드대학의 한 연구기관이 세계의 정치지도자 8명에 대해 20개국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는데 평균 신뢰도가 40%를 넘은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다. 가장 신뢰도가 높았던 지도자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35%의 신뢰도를 받은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 다음으로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32%였고 영국의 브라운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미국의 부시대통령 등은 모두 20%대였다. 그리고 후진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대개 10%대와 그 이하로 나타나 세계적인 지도력의 위기를 여실히 반영했다.
사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볼 때 이 시대에는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수십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인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치적 경험이나 능력, 식견과 인품 등에서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인들 보다 별로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서도 훨씬 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인물이 이렇게도 없을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외교문제나 경제문제에 대처하는 것을 볼 때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전문 인력의 자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나 그밖의 나라에도 국내문제와 세계문제를 잘 처리하는 지도자가 없다. 다행히도 이 시대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지도자, 특히 정치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세계문제를 앞에서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시대를 내다보며 이끌어 가자면 가는 방향, 즉 비전이 있어야 한다. 또 이끌어 갈 수 있는 힘, 즉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힘은 강제로 이끌어가는 물리적인 힘, 폭력적인 힘이 아니라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편안케 하는 지성과 덕성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러나 비전과 능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도 지도자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익을 위해 사익을 버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철저한 멸사봉공의 정신이다.
그런데 왜 이런 지도자가 없나. 이 시대가 이기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돈이 많은 사람이 회사를 만들어 훌륭한 사람을 물색하여 경영을 맡겼으나 지금은 자기가 잘났던 못났던 직접 경영한다. 정치판에서도 과거에는 훌륭한 지도자를 받들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았으나 지금은 상하 간, 동지 간 신의는 없고 정치적 실리만 챙긴다.
정치 집단이 정권을 잡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파당의 권력을 강화하여 사익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이 그렇고 학자나 사업가 등 사회 지도층이 모두 그러하니 누구를 바라보고 따라갈 만한 사표가 없고 지도자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만나 애급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했고 여호수아라는 지도자를 따라 가나안 땅을 점령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세계의 모범 민주국가로 발전한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훌륭한 스승이나 선배가 중요한 것처럼 국가와 국민에게는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국가적 문제로 인한 국민간의 갈등이 심해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다. 또 북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런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진정한 정치 지도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사리사욕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참다운 지도자들이 나와야 국가와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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