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온 1960년대 만 해도 민권법이 의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이 서명은 했지만 인사 문제에 있어 기업들이 자진하여 이법을 따르지는 않았다. 1964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흑인 지도자들이 거의 목숨을 걸고 싸워서 만든 법이다. 작고한 흑인 최초 대법관 터굿 마샬,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이들이 법제정에 앞장을 섰다.
이 법 때문에 연방정부 기관에서는 주로 흑인을 많이 채용했다. 후에 어쩌지 못한 기업에서는 흑인보다 아시아계를 선호하여 연방법이 요구하는 백인 비백인 비율을 맞추어 나갔다. 노조 파업 때 아시아계가 파업 파괴자 노릇을 한 셈이 되어 흑인들로 부터 미움을 사기도 했다.
자기네가 목숨 바쳐 이룩해 놓은 것을 나중에 이민 온 아시아 사람들이 차지한다고 싫어하며 폭력을 사용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흑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부 한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아시아계 사람들은 인종 문제에서 백인 편을 들며 흑인들을 몰아세우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1940, 1950년대에 유명한 소프라노 마리안 앤더슨이 흑인이라고 카네기 홀에 서지 못했다. 우리에게 ‘투 영’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넷 킹 콜 같은 이는 라스베가스 공연이 끝나면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기가 공연한 호텔에 투숙 할 수 없어서 도시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 같은 곳에서 밤을 지내기도 했다.
2차 대전 때 많은 공을 세운 흑인해병은 버스가 남부의 ‘매이슨 딕슨 라인’을 지나갈 때면 앞자리를 백인한테 넘겨주고 자신은 흑인이라고 뒷자리로 옮겨갔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 첫 임기에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그의 자서전 ‘아메리칸 드림’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베트남전 임무를 마치고 다음 부임지로 가기 전에 고향인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고 조지아주 포트 베닝까지 운전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남부에 들어서자 백인전용 화장실은 육군 장교 정복을 한 파월 대위한테 허용 되지 않아서 숲속에서 용무를 보았다고 한다.
1940년 말 UN이 발족하며 랄프 번치 박사가 사무차장에 취임하는 가히 경이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는 다름 아닌 미국 흑인이었으며 인종 차별주의자 특히 남부 출신 상하원의원들이 그의 임명을 두고 반발이 거셌으나 유럽 여러나라들의 도움으로 차장이 됐다고 한다. 그는 정치적인 수완으로 화약고 같았던 중동 문제를 잘 해결하고 이스라엘 건국에 큰 공헌을 했다. 그가 미국에서 받은 인종차별을 안타깝게 생각한 수혜자 나라 지도자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다는 기가 막힌 뒷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사람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역경을 이긴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고 미합중국을 이끈다. 1984년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코니 센터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월터 먼데일과 제랄딘 페라로가 정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러닝메이트가 된 사건이다.
그 전날 옆 건물에서 아시아계 민주당지도자 모임이 있었다. 전국 민주당 재정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나는 이제 여자 부통령이 나올 법한 이때 금세기가 가기 전에 아시아계를 비롯한 비백인 정부통령이 나와야된다는 연설로 장내에서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25여 년 전에 우리가 이야기한 일들이 사실로 벌어지고 있다. 일리노이 출신 초선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막강한 클린턴의 정치 머신을 이기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이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여러 유색인종 아이들에게 엄청난 이상을 심어준다. 이제 우리 아시아계 아이들도 자라며 대통령이 된다는 꿈이 영글어 간다. 한인 이민은 다른 인종에 비해 역사가 오래지 않았지만 300년, 400여년동안 백인들 억압 속에 자란 흑인들, 아메리칸 인디안들, 멕시칸 후예들이게는 참 뜻 깊은 사건이다.
이렇게 백인만이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후보를 포용하는 매조리티 사회에 경의를 표한다. 지방색이 강한 곳에서 성인이 되어 이민 온 우리에게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근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공평하게 대우하는 일들이 계속 될 때 미국의 앞날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이제 미국은 유럽계 후예 백인들만이 주도권을 쥐는 나라가 아니다. 나도 예전 민주당 친구들을 찾아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를 위한 가두유세를 도와야 하겠다.
이종혁
이스트베이 칼스테이트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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