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요즘 종교생활에 몰두해 있다고 한다. 이런 그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동방(the East)이 계속 부상하고 있다. 동방은 머지않아 서방(the West)을 압도할지도 모른다. 동방은 그러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계를 이끌어나갈 것인가.”
서방의 상대적 몰락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영적인 중요성은 배제된다. 그리고 오직 물질적 부(wealth)만 맹목적으로 추구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결말을 이런 식으로 내다본 것이다.
말하자면 기독교 가치관에 토대를 둔 서방이 주도력을 상실하는 그런 세계가 지닌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일본의 한 논객이 이에 대해 토를 달고 나섰다. ‘서방에 대립하는 동방’이란 개념 자체가 전 근대적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새삼 제기한 게 ‘서방’에 대한 정의다.
비슷한 논쟁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세기는 과연 끝났는가 하는 것이 우선의 쟁점으로, 이어지는 논쟁은 미국 이후의 세계는 어떤 세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동방’-아시아의 부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특히 주목 대상은 중국으로, 새로운 경제적 파워, 중국이 기존의 세계질서에 과연 순응할 것인지가 또 다른 포컬 포인트다.
일부 논자들은 긍정적이다. 뉴스위크의 파리드 자카리아 같은 논객이 그 중의 하나다.
“섬뜩할 정도로 민족주의가 팽배해 있다. 오늘의 중국은 1910년대 독일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중국인은 실용적 국민이기 때문이다.” 자카리아의 진단으로, 민족주의 팽배가 위험요소이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낙관적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맞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는 전망은. 한 세기 전 민족주의에 들뜬 독일도 오늘날 평화애호국가가 됐으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나. 양차 세계대전이다.” ‘장기적’은 도대체 언제까지를 의미하는가. 제기되는 반론으로, 그 선봉에 선 논객은 로버트 케이건이다. 지난 세기 독일과 일본의 부상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권위주의형 파워의 대두는 충돌을 불러올 개연성이 크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 국제질서는 민주주의 가치관을 근간으로 형성돼 있다. 이런 국제질서, 국제제도 자체가 권위주의 체제에게는 위협적이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 체제에 순응할 것인가. 답은 아니라는 거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중심의 체제에 편입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의 붕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이건이 내린 전망은 세계는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 양 진영으로 재편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와 전통이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정체성(政體性)이 문제다.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로 진영이 나뉜다는 것이다.
‘서방’이란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역시 같은 결론이다. 문화와 전통의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종적, 지리적 개념도 아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등의 가치관이 존중된다. 그게 ‘서방’의 개념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서방이다, 한국도 서방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중국은 서방이 아니다. 권위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공산주의도 아닌 파시즘 체제라는 게 일부의 지적이다.
“1910년대 독일을 방불케 한다.” 자카리아가 한 말이다. “그 정치적 행태가 80년 전 유럽의 파시스트를 빼 닮았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마이클 리딘의 지적이다.
내셔널리즘이 팽배해 있다. 온갖 ‘공정’을 통해 먼 옛 왕조의 영광을 되살림으로써 중국민의 위대성을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편 역사의 상처를 들쑤셔 외국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한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히틀러의 독일과 흡사하다는 얘기다.
“모택동의 후계자들은 실패한 공산주의자로 전락했고 등소평의 후예들은 파시스트로 변했다.” 중국은 공산체제 해체 대신 파시스트 체제로 전이과정에 있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했나. 비굴할 정도로 로우 프로파일을 지키던 중국이다. 그 중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돈푼이나 만지면서 건건이 다른 얼굴을 보이고 있다. 교만에 가득 찬 위협의 얼굴이다. 모처럼의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그 험상스런 표정을 드러냈다.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로 현대세계의 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 대통령이 방문 중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 발언이다. 한미동맹을 공공연히 비하하는 ‘계산된 외교적 무례’를 저지른 것이다.
이 중국의 진심은 과연 무엇일까. ‘6.25의 달’ 6월을 맞아 새삼 던져보는 질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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