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1,0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고 하자. 현명하게 투자 결정을 한 데다 운도 따라 줘 투자액이 5만1,000달러까지 늘었다. 팔아 버리면 세금을 제하고도 수만달러의 순소득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황. 그러나 돈을 더 불리자는 욕심이 고개를 들어 계속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갑자기 증시가 폭락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미련을 못 버려 미적거리다 돈은 처음 투자했던 1,000달러로 다시 줄어드는 상황이 됐다.
마음은 상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합리화로 자기 위로를 할 것이다. “어차피 1,000달러로 시작했던 거니까 뭘…” 냉정히 보자면 자기 돈 5만달러를 날린 것인데도 우리 마음은 이런 작용을 해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그런데 수년간 안 먹고 안 쓰고 미래를 위해 저축해 왔던 알토란같은 돈 5만1,000달러를 집어 넣었다가 증시폭락으로 1,000달러가 됐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허리띠를 졸라맸던 수년간의 고생과 노력이 생각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지금의 힐러리가 바로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지난 수년간 힐러리는 대권을 위해 정치적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민주당 예선전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녀와 감히 비교할 만한 자산을 지닌 민주당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후보지명을 의심했던 민주당원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의해 요동치더니 이제는 올 11월을 위해 그동안 공들여 저축해 왔던 자산이 무용지물이 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허탈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반대로 별다른 정치적 자산 없이 경쟁에 뛰어 들었던 오바마가 지금의 힐러리와 똑같은 상황에놓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 또한 경선포기를 놓고 심각히 고민했겠지만 아마도 조금은 더 쉽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어차피 거의 무일푼으로 시작했던 경선이었으니…”라는 자기 위로와 함께 말이다.
힐러리는 뻔한 결론를 향해 가고 있는 민주당 후보경선 완주의지를 반복해 피력하고 있다. 그녀의 이런 입장을 놓고 명분론과 입지 강화론 등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경선 출발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 맞닥뜨려 있다는 현실에 대한 심정적 거부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계속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난 주말 불거져 나온 로버트 케네디 암살 관련 발언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힐러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선을 완주해야 하는 이유로 1968년 민주당 경선에서 1위를 달리다 암살된 로버트 케네디 전 연방 상원의원의 예를 들어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은 오바마가 힐러리의 사과를 받아들여 일단락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힐러리가 적절치 못한 사례를 들며 금도를 넘는 발언을 한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힐러리의 공격적 발언에다 남편인 빌 클린턴의 감정 섞인 역정까지 보태지면서 민주당 경선 분위기는 점차 아슬아슬해 지고 있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당의 단합을 위해 힘쓰겠다지만 후보의 상실감과 좌절감이 크면 클수록 지지자들의 상실감 또한 커지게 돼 있다. 아무리 수습에 힘쓴다고 해도 시기를 놓쳐 버리면 온전한 수습은 물 건너 가 버린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행운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가 똑똑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는 재빠르다. 하지만 반대의 결론을 뒷받침 하는 사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결론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는 훨씬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 판세가 결정됐는데도 힐러리가 고집스레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힐러리의 경선 고집을 둘러 싼 무수한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가운데 정치 평론가 딕 모리슨은 “힐러리가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를 떨어뜨리고 4년 후를 기약하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때 너무 도발적으로 여겨졌던 그의 ‘재 뿌리기’ 주장은 버티기가 길어지고 그에 비례해 오바마에게서 등 돌리는 힐러리 지지자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신빙성을 얻어 가고 있다. 힐러리 입장에서 보면 얼토당토 않을 이런 분위기는 그녀의 정치적 장래에 바람직하지 않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 서 있는 힐러리는 좀 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지혜로움은 지식과 분석뿐 아니라 경험과 직관을 아우른다. 미련을 버리고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은 학식과 이성만으론 되지 않는다. 민주당 원로인 카터 전 대통령은 예비선거가 마무리되는 6월초가 힐러리가 경선포기를 할 수 있는 적기라고 조언하고 있다. 힐러리가 똑똑한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 이제 그녀가 보여줘야 할 것은 지혜로움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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