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중 상당수는 스코틀랜드계 아이리시다. 전쟁이 있을 때마다, 그러니까 남북전쟁에서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최근의 월남전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를 위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계층이 바로 그들이다.
아메리카는 그들에게 있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마더 랜드’다. 이런 그들의 열정과 관련해 나온 말이 ‘화이트 내셔널리즘’(white nationalism)이다. 다른 건 몰라도 대통령만은 어찌됐든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정서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한때 그들은 80% 이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오늘날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밑도는 정도다. 지난 50여년 동안 미국사회의 중추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들이 그러나 요즘은 무시되고 있다. 경제적 약자로 전락하면서.
어느 집단을 말하나.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대체로가 블루칼러로 소득은 중하류다. 가구소득이 연 6만달러 이하 계층으로, 2005년 현재 전체 미국 가구의 33%가 이에 속한다. 근로계층 백인들이다. 지역적으로는 중서부, 남부지역의 중소도시에 주로 몰려 있다.
이들이 처음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때는 1964년 대통령 선거 때다. 케네디 암살, 민권법 등의 여파를 타고 현직인 민주당의 존슨은 공화당의 골드워터를 제치고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한쪽에서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본래 민주당의 표밭이었다. ‘딥 사우스’로 불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러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등 그 남부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일시적 해프닝이겠지. 당시의 일반적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후 이 남부 유권자의 표심은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그 표, 다시 말해 근로계층 백인표가 어디로 쏠리는가에 따라 대권의 향방이 결정됐던 것이다. 그 시작이 1968년 대선이다.
이후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7 대 3’으로 공화당이 압도적 스코어를 기록했다. 1968년 닉슨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뒀다. 그 때부터 10번의 대선에서 승점을 기록한 민주당 후보는 카터와 클린턴이 전부 다다.
왜 그들은 그러면 민주당에 등을 돌렸나. 존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흑인의 인권신장을 가져온 민권법 서명이 그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다.”
진보의 시대가 열렸다. 민권법이 발효되고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진보라는 이름하에 변화가 일었다. 그 변화의 물결을 그러나 백인 근로계층은 불안한 시각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치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인종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입장은 이렇게 다듬어져 갔다.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 경제적 이해가 아니다. 해서 그들은 가치우선 유권자로 불렸다. 이후 미국의 선거는 문화전쟁, 말하자면 가치관과 가치관의 충돌 양상을 보여 왔다. 낙태전쟁의 예에서 보듯이. 그리고 인종문제는 금기사항이 됐다. 최소한 겉으로나마.
2008년 대선이 본선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양상이 변질되고 있는 느낌이다. “근로계층 백인유권자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나.” 이 질문이 정치권의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인종문제가 숨겨진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백인 근로계층은 무엇을 원하나’- 이 문제를 먼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사람은 힐러리다. “…무엇을 원하나.” 정치적 수사를 모두 배제하면 그 답은 ‘백인 대통령 후보’다. 흑인 대통령 후보가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말에 다름 아니다.
가망이 없다. 그런 힐러리가 경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가망 없는 도전에 그러나 표가 몰린다. 백인 표다. 근로계층 백인의 표다.
무엇을 말하나. 앞서 지적대로 한 때는 미국의 정치를 주도했다. 이런 그들이 ‘경제적 약자’로 몰리면서 그 위상이 약해지고 있다. 그 분노의 표출이 아닐까. ‘화이트 내셔널리즘’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하얀 분노’라고 할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진보를 표방한다. 소수계 이해를 대변한다. 그런 민주당이다. 그 민주당 경선에서 인종카드가 난무하다니. 여기서 한 가지 목도되는 사실은 이번 선거는 어쩌면 가장 정직치 못한 선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따로 노는.
미국 역사에 ‘뉴 챕터’를 쓸 것이다. 오바마가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굳어지면서 나오는 전망이다. 그게 그런데 그리 간단치는 않을 것 같다. 분노한 백인 근로계층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니 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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