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직장들이 몰려 있는 여의도의 한 닭고기 전문식당. 평소 같으면 손님들로 북적댈 저녁 7시30분 식당 안은 스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단 1명의 손님도 없다. 서브되는 음식이 없다보니 날아다니는 파리조차 구경하기 힘들다. 25년간이나 이 식당을 운영해 왔다는 주인은 “전업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같은 시간 인근 횟집과 돼지고기 전문집들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이다. 식당 안에는 자리가 모자라 업소 밖에 임시 테이블을 놓아야 할 정도이다. 업주들은 매상이 최근 50% 이상 늘었다며 즐거운 비명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후 한국의 방송사가 전하는 두 개의 풍경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견됐다지만 아직 인간 감염사례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상황. 또 조류인플루엔자가 적정 온도에서만 조리하면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는 것은 하도 들어 이젠 기초적 상식에 속한다. 특히 한국식 닭요리들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생존확률이 0이다. 그런데 정작 거의 0로 떨어지고 있는 생존율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인플루엔자가 아니라 손님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버린 업소들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주말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람이 쓰러지는 첫 피해사례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닭을 길러오던 농부로 당국이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며 항의시위를 벌이다 음독을 시도했다. 인플루엔자는 인체에 침투해 병증을 유발하지 않고도 벌써 인간을 쓰러뜨린 것이다. 당해보지 않고 누가 그 농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이쯤 되면 “닭 한 마리가 재채기 하면 전 세계가 벌벌 떤다”는 비유가 실감난다.
조류인플루엔자야 현재진행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쇠고기 식당까지 손님들의 발길을 끊기고 있는 것은 과잉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의 미국산 쇠고기가 아직 한국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금까지 먹어 오던 똑같은 쇠고기에 대해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 갈 쇠고기의 안전성을 둘러 싼 사회적 논란은 충분히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이런 패닉현상은 조금 우려스럽기 까지 하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광우병 논란 속에 같은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또 하나의 현상은 불안장애이다. 조금만 신체에 이상이 생겨도 “혹시 문제의 병에 감염된 것 아니냐”며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사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도 믿지 않고 여전히 불안해 한다.
몇 년 전 미국에 대한 탄저공격이 있은 후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독개스 현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핏속에서 단 1나노그램의 인자라도 발견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불안감이 신체증상을 일으켰던 것이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불안이 유행병처럼 사람들 사이에 번지는 현상을 유럽의 저명한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알라미즘’(alarmism)이라 불렀다. 경보를 뜻하는 ‘알람’에서 파생된 ‘알라미즘’은 온갖 불안과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쓰는 현상을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 단어다.
‘알라미즘’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진화해 오는데 알라미즘 성향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위험을 과장하는 우리들 뇌의 작동양식은 인간보다 강한 존재와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진화를 돕는 기능을 해 왔다. 신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더욱 오래 산다는 조사결과도 있고 보면 불안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안과 우려가 정도를 넘어서면 병이 된다. 탄저병 소동이 보여 주듯 이런 증세에 걸려 있는 개인에게는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는 히스테리가 일어난다. ‘불안의 코드화’라고 할까, 히스테리에 감염된 사회는 정치적 조작에 취약하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인간의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해 왔지만 인식의 작용체계는 여전히 원시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과학적 합리주의의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근거 없는 불안들에 발목 잡혀 전전긍긍하고 있다.
불안은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는 감옥이다. 불안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무기력해 지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감옥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열쇠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때 닭요리 식당을 찾는다면 정말 왕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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