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선수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투수로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아침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펼치면 스포츠 페이지부터 들춰 봤었다. 원래 스포츠 페이지는 잘 들여다보지도 않았었건만.
한국의 뉴스 웹사이트를 찾기 시작한 것도 박찬호 선수 때문이었다. 미국 언론에 그의 경기 모습이 자세히 실리지 않은 어느 날 답답하여 인터넷에서 한국 신문사들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그의 뉴스를 읽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다저스 경기장에 가서 그의 경기 모습을 본 것은 아니다.
그럴 만큼 야구 경기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어떤 성적을 내고 있는지 언제나 몹시 궁금했다. 어쩌다 텔리비전에서 그의 경기를 볼 기회가 있으면 리틀 리그 게임에 출전한 아들을 지켜보기라도 하듯,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시원히 이겨주면 좋으련만, 지난 몇 년간은 아슬아슬 한 투구씩 던져가는 그의 모습이 비춰질 때마다 괜히 내 등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몇 팀을 돌아 올해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다저스로 돌아온 그가 스프링 캠프에서 두번째 경기를 한날, 텔리비전 뉴스를 한쪽 귀로 듣고 있던 남편이, “찬호가 오늘 엉망이었나 봐. 이젠 선수생활이 더 어렵겠는 걸”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 했다. 그가 멋지게 재기하기를 바랐는데…
다음날 아침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스포츠 난을 펼치니 박찬호가 멋진 경기를 했다고 찬사를 한 기사가 실렸다. “여기 좀 와 봐요! 당신 순 거짓말을 했단 말예요!” 남편을 불러대니 놀란 얼굴로 다가온다. “찬호가 아주 잘 했다잖아요! 아니, 그럼 그렇지, 대한의 건아가 그리 쉽게 사라질 줄 알았단 말예요!” 의기양양한 나의 말에 남편은 멋쩍어 한다. “내가 어제 잘못 들은 모양이군.”
그 순간 왜 내가 이리도 박찬호 선수 일에 열을 올릴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아무리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 해도 물설고 낯선 땅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가운데 프로 스포츠 세계의 엄청난 경쟁을 겪어야 했을 그를 생각하면, 처음 이민 와 서툰 영어로 미국 학교에 적응하노라 힘들었던 나의 과거를 연상하며 그의 성공과 실패가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일까?
언젠가 월드컵 축구에서 미국과 한국이 맞붙었을 때 평소 한국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거나 한글을 배우겠다는 자세를 보이지 않던 미국 태생의 조카들이 한결같이 한국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을 보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설의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 순간이었다.
그냥 같은 한국인이라서, 또는 동양인이라서 편이 되어준다는 것은 결국 인종차별의 원인과 뿌리가 같다고 여겨져 피를 강조하는 것에 별로 동조하지 않던 나였지만, 같은 인 종 또는 민족끼리 연대감을 느끼는 것 자체는 아주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서 외국인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장관에 고용할 수 있도록 법을 마련한다거나 재미 동포들을 총영사 등 관직에 임명하는 등 한국인의 의미에 대해 열리고 넓혀진 자세를 보이고 있는 듯해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문화 정책 과 외국인 방문객 유치를 책임지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 관료가 어느 산하 단체 간부의 인준을 거부하면서, “미국 영주권자라 애국 심이 의심스럽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박찬호를 응원하듯, 한국과 한국인에 꾸준히 박수를 보내고 있는 나 같은 재외 동포들의 고국 사랑이 아무리 짝사랑일지라도 새로 출발한 정부의 인기가 별로 없다는 소식에는 마음이 쓰인다. 나는 솔직히 대통령이 어느 당인지, 그가 노씨인지 이씨인지 개의치 않는다. 누구였든 간에 대한민국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로 이끌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쎄, 박찬호에 대한 짝사랑이 포기가 안 되듯, 이 또한 결코 포기가 안 되는 짝사랑인 모양이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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