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솔린 값이 치솟으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갤런 당 4달러를 넘어서면서 날개 돋힌듯 팔려 나가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매력은 개솔린 자동차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높은 연비에 있다. 하이브리드는 개솔린 엔진과 전기 배터리의 결합으로 움직인다. 기존 공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잡종’ 혹은 ‘혼혈’ 자동차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세상에 처음 선보였을 때 소비자들은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엔진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과연 광고처럼 효율적인지 등등 확신이 서지 않은 소비자들은 선택을 꺼렸다. 그러나 개솔린 값이 폭등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업계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리드 개발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던 일본 회사들은 지금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미국 자동차 3사도 뒤늦게 하이브리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일본 회사들을 따라잡기가 버거워 보인다. 갤런 당 5달러가 머지않았다는 전망이고 보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장래는 높은 촉수 전구보다 더 밝아 보인다.
자동차 업계가 상징하듯 ‘하이브리드’는 이번 세기를 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이브리드는 이질적인 요소를 섞어 놓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잡종’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이 ‘잡종의 힘’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입증되면서 여러 분야에서 앞 다퉈 하이브리드를 도입하고 있다. 자동차와 셀폰 같은 제품 개발은 물론 인적자원 활용과 정책, 그리고 학문 연구 등에서도 하이브리드가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하이브리드의 눈으로 세상을 본 선각자로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탈리아의 명문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의 최전성기는 15세기 로렌초 데 메디치 때였는데 그는 어린 미켈란젤로를 받아 들여 숙식을 함께 하며 그의 천재성에 물을 흠뻑 주었다. 메디치가의 후원 아래 과학자들과 예술가, 시인, 철학자들은 활발히 교류했다. 그리곤 엄청난 창조적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이것이 화려한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또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과 마리는 프랑스 왕실로 시집가면서 이탈리아의 요리사들을 데리고 갔다. 이들이 프랑스의 궁정요리 문화를 꽃피웠다. 우리가 비싼 돈 내고 먹는 고급 프랑스 요리는 바로 이탈리아 요리와의 결합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른바 ‘메디치 효과’이다.
하이브리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순혈주의’의 신화는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다. 그런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 혼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들의 약진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인들 중 혼혈비율은 이미 3%를 넘어섰다. 민주당 대선 경쟁에서 앞서 가고 있는 오바마도 혼혈이다. 미국 내의 혼혈은 사회 구성상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히 비율 때문에 혼혈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뛰어난 장점이 이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힘을 다양한 피가 섞인 그의 혈통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 오바마의 흑백 혼혈 또한 그의 성장기에는 초기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의구심과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다양성을 껴안을 수 있는 강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유전자가 다양한 사회일수록 생존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한국정부는 해외 한인들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정서법’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중’이라는 말이 안겨 주는 부정적 뉘앙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두개의 국적이 특권의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을 ‘1+1=2’라는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1+1=3’이라는 혼합의 개념에서 본다면 경쟁력을 높여주는 자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메디치 효과’처럼 말이다. 한국정부가 이중국적 허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이브리드 시대는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이동성 때문에 국경의 의미도 별로 없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자크 아탈리가 적절히 이름 붙였듯 21세기는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로운 유목민 시대이다. 어디 국경뿐인가. 이념 또한 마찬가지다. 좌파 지식인인 아탈리는 우파인 사르코지 정부의 정책수립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념의 순혈만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적에 있어서도 이젠 순혈의식을 버릴 때가 됐다. ‘하이브리드 국적’은 점차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메디치 효과’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스웨덴의 프란스 요한슨이다. “이질적인 역량을 능숙하고 유연하게 융합했던 메디치 가문에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한다”는 요한슨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섞여야 강해지고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더 효율적이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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